우리 기억 속의 색

미셸 파스투로 지음|최정수 옮김
안그라픽스|376쪽|1만5000원

초록색은 언제부터 '안전'의 상징이 됐을까. 축구 심판복이 옛날에는 검은색이었다는데…. 색채학자인 저자가 일상생활과 문화, 언어와 역사의 조각 속에서 색채의 의미, 변천사를 찾아냈다. 색을 다룬 책이나 컬러 이미지가 하나도 없다. 이미 우리는 색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메디치상 에세이 부문 수상작.

초록색

초록색은 원래 무질서와 위반의 상징이었고, 특히 프랑스에서는 불행을 부르는 색이었다. 사람들은 초록색 에메랄드를 꺼렸고, 하인과 광대의 색이라 생각했고, 초록 표지의 책은 팔리지도 않았다. 염료 탓이었다. 당시 염색업자는 식물에서 염료를 얻었고, 이렇게 얻은 색은 흐릿하고 창백했다. 초록색의 기구한 팔자를 바꾼 건 18세기 뉴턴의 '스펙트럼 발견'이었다. '위험한' 빨간색의 보색인 초록색은 안전한 색이란 해석이 퍼졌다. 1780~1840년 통행을 허가할 때 '초록색 불을 켜주는 것'이 관습이 되면서 초록은 '자유'의 상징색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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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

중세시대 노랑은 거짓과 비겁, 불충과 치욕의 색이었다. '원탁의 기사'에서 노란색은 반역의 색, 유대인·나병환자·죄인 등에게 부여되는 불명예스러운 색이었다. 나중에는 무질서와 광기의 색으로 평가받았다. 착한 노란색은 금(gold)뿐이었다. 근대에는 질병과 죽음, 밀고나 배신을 뜻했다. 그러나 '투르 드 프랑스' 덕에 운명이 달라졌다. 맨 앞 선수가 노란 셔츠를 입으면서 '노란색'은 경쟁에서 '선두에 서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럼 왜 노란색이었을까. 대회 주최사인 일간지 '로토'의 종이 색이 바로 노란색이었다.

빨간색

1980년대 초 파리의 열차 RER B선 새 객차에는 빨간색 좌석과 파란색 좌석이 번갈아 배치됐다. 그러나 빨간색 좌석에 앉으려는 승객은 거의 없었다. 아무도 그 진짜 이유를 말할 수 없지만 빨간색은 지금까지도 위험한 색 또는 위반의 색으로 통한다. 빨간색의 일반적 상징은 많든 적든 불과 피, 폭력과 전쟁, 잘못과 죄와 연관되어 있다. 빨간색은 지나치게 진하고, 강하고, 유혹적이어서 다른 색과 거리감이 있다. 동시에 축제·사랑을 뜻하는 이 아이러니.

검은색

유럽에서 검은색은 오랫동안 경찰과 사법기관을 대표하는 권위의 색이었다. 경기 심판 옷도 검은색이었다. 묵직한 검은색 옷에 호각과 군대식 몸 신호가 더해지면 권위는 절정에 달한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컬러TV가 스포츠 경기를 더 많이 중계하면서 심판 옷도 컬러풀하게 변했다. 더불어 그들의 권위는 예전보다 약해졌다.

6세기 초 북인도에서 처음 생긴 체스는 원래 빨간 진영과 검은 진영이었다. 서기 1000년 직전 유럽에 도입되면서 적백으로 바뀌었다. 기독교에서 검은색은 악마, 죽음, 죄악의 색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3세기 뒤 아리스토텔레스의 색 이론이 널리 확산되면서 사람들은 검은색을 겸손과 절제의 색으로 여기게 됐다. 역시 운명의 장난.

파란색

그리스어와 라틴어에는 '파란색'을 뜻하는 단어가 없다. 바다와 하늘, 파랑에 가까운 붓꽃이나 수레국화, 얼룩매일초를 묘사할 때도 파란색과 관련이 없는 'erythros(빨간색)'이나 'prasos(초록색)', 'melas(검은색)' 같은 어휘를 썼다. 그리스인들에게 색을 나타내는 단어는 실제 색이 아니라 '색의 농도'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자연에서 나는 먹을거리 중에는 파란색이 거의 없었다. 파란 송어, 블루치즈는 재료와 조리법의 이름을 살짝 빌려와 붙인 것이다.

로마인들도 파란색을 좋아하지 않았다. 파란색은 바바리아족, 게르만족, 켈트족의 색이었다. 파란 눈의 여자는 방탕한 것으로 여겨졌다. 파랑의 운명도 변했다. 진정제와 수면제 포장을 보라. 파란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