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방에 폭탄이 있어. 필요하다면 사용할 거야. 내 옆에 앉아. 이 비행기는 납치됐거든.'
1971년 11월 24일 오후 2시 50분쯤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공항을 출발해 시애틀로 가는 노스웨스트항공 305편 보잉727 항공기 안에서 40대 중반의 한 남성이 이렇게 쓰인 쪽지를 여성 승무원에게 건넸다. 이 남성은 검은색 정장 차림이었다. 승무원이 자신에게 호감을 가진 승객이 전화번호를 적어준 것으로 생각하고 쪽지를 그대로 주머니에 집어넣자 이 남성은 "읽어보는 게 좋을 거요. 내가 폭탄을 갖고 있거든"이라고 말했다. 승무원이 폭탄을 보여줄 수 있냐고 묻자 이 남성은 가방을 열어 폭탄으로 보이는 빨간색 원통 꾸러미를 확인시켜줬다.
◆현금 20만달러와 낙하산 4개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성공한 항공기 납치범'으로 불리는 D B 쿠퍼는 침착하고 치밀했다. 그는 20달러짜리 지폐로만 이뤄진 현금 20만달러와 민간용 낙하산 4개를 요구했다. 그는 시애틀공항에서 요청한 물건을 건네받자 승객과 승무원 36명을 풀어줬다. 그러나 조종사 등 승무원 4명을 다시 인질로 잡고 비행기를 이륙시켜 멕시코시티로 가라고 했다. 단 속도와 고도가 각각 시속 190㎞, 3000m를 넘지 말라고 했다. 비행기가 다시 이륙한 지 30분쯤 지난 후 조종실에 모여 있던 승무원들은 기체 뒤편에서 약간의 진동을 감지했다고 한다. 쿠퍼가 그때 비행기 뒤쪽 문을 열고 뛰어내린 것으로 보인다. 비행기엔 그의 넥타이와 넥타이핀, 담배꽁초만 남아 있었다.
이후 40년이 지난 최근까지도 쿠퍼의 행방은 묘연했다. 생사도 확인되지 않았다. 미 연방수사국(FBI)이 수사한 용의자만 1000여명에 달했고, 이 사건을 다룬 책과 영화만 20종류가 넘게 나왔다. 한동안 잊혔던 쿠퍼사건은 영국 텔레그래프가 지난달 30일 FBI가 최근 새로운 용의자를 확보했다고 보도하면서 다시 화제가 됐다. FBI는 1일 이 같은 사실을 인정했고, 3일엔 쿠퍼가 자신의 삼촌이라고 주장하는 여성이 미 ABC방송과 인터뷰를 했다.
◆"피투성이 삼촌을 봤다"
말라 쿠퍼는 이 인터뷰에서 자신의 삼촌 린 도일 쿠퍼가 바로 D B 쿠퍼라며 1972년에 찍은 삼촌의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 속 남성의 모습은 FBI가 배포한 몽타주와 비슷하다. 말라는 또 삼촌이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고 미국 북서부에서 살다가 1999년 사망했다고 말했다. 말라는 2005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 "오랫동안 사라진 네 삼촌이 비행기를 납치했던 걸 기억 못 하느냐"고 했다고 말했다. 또 납치사건 직후 추수감사절 때 할머니 집에 갔다가 피 묻은 옷을 입은 삼촌을 봤고 당시 삼촌으로부터 교통사고 때문이라는 설명을 들었다고 했다. 말라는 "삼촌은 한국전 참전용사지만 낙하산 부대원은 아니었다"고도 했다.
FBI는 이 여성의 주장을 반박하거나 입증할 증거는 갖고 있지 않다고 뉴욕타임스가 3일 전했다. 이 여성이 FBI에 제출한 쿠퍼의 소지품에서도 지문 등 그의 신원을 확인할 만한 증거가 나오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까지는 쿠퍼가 낙하 직후 사망했을 것이라는 설이 유력했다.
◆낙하지점 확실치 않아
그동안 쿠퍼와 관련된 기록은 그가 '댄 쿠퍼'란 이름으로 항공기 티켓을 구입했다는 점과 당시 그를 목격했던 항공사 직원, 승객들을 통해 수집한 인상착의를 바탕으로 만든 몽타주, 그가 비행기에 남긴 소지품 정도가 전부였다. D B 쿠퍼란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당시 일부 통신사 기자들이 FBI가 지목했다 배제한 D B 쿠퍼란 용의자와 댄 쿠퍼를 혼동해 그를 D B 쿠퍼로 적어 기사를 보내는 바람에 전 세계 언론사들이 이를 받아 D B 쿠퍼로 쓰면서부터다.
그가 어느 지점에서 뛰어내렸는지도 확실치 않았다. 비행기가 시애틀과 네바다 주 리노 사이를 비행하던 중 뛰어내린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당시 근처 공군기지에서 공군 전투기 두 대가 쿠퍼가 탄 비행기의 위쪽과 아래쪽에 붙어 몰래 그를 쫓아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밤인 데다 비바람이 몰아쳐서 전투기 조종사들도 그가 뛰어내리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FBI는 납치됐던 비행기를 타고 그의 이동 경로를 시뮬레이션한 뒤 그의 낙하 예상지점을 파악, 이듬해 봄에 군·경, 민간인 지원자들과 함께 대대적인 수색에 나섰지만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다. 당시 자원봉사자가 해골을 발견해 쿠퍼의 시신이란 주장이 제기됐는데 조사결과 사건 몇주 전에 그 지역에서 납치·살해됐던 십대 소녀의 유골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