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참모총장(공군 대장)을 지낸 군(軍)의 최고위 장성 출신까지 주요 군사기밀을 빼내 외국 군수업체에 유출하는 '스파이 행각'을 벌인 것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영관급 장교들은 물론 준장·소장에서 대장 출신까지 군사기밀을 빼내 외국에 팔아먹은 현실이 수사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 2005년 이후에만 25건에 50여명이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로 재판받을 정도로 만연된 예비역 간부들의 안보 불감증과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에 대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이진한)는 2004년부터 작년 초까지 공군의 무기 구매 계획 등 20여건의 2~3급 군사기밀을 빼내 12차례에 걸쳐 미국 록히드마틴사(社)에 넘긴 혐의로 전 공군참모총장이자 무기 중개업체 승진기술 대표 김상태(81)씨를 불구속 기소했다고 3일 밝혔다.

김씨와 공모해 실제 군사기밀 수집·전달 업무를 도맡은 혐의로 승진기술 전 부사장 이모(62·예비역 공군 대령)씨와 상무이사 송모(60·예비역 공군 상사)씨도 불구속 기소했다. 앞서 법원이 이씨·송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기각하자 검찰은 고령을 이유로 김 전 총장까지 불구속 기소했다.

김씨는 공군사관학교 2기 출신으로 1982~1984년 공군참모총장을 지내다 예편한 뒤 1995년 록히드마틴의 국내 무역대리점인 승진기술을 설립했다. 검찰은 김씨가 승진기술을 설립한 지 16년이 지난 데다 공소시효(7년)도 지나 자료 멸실과 진술 거부로 2003년 이전의 행적은 파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군 후배들 통해 핵심 기밀 무차별 접근

승진기술의 직원은 공군 대장 출신 김씨를 비롯해 지난 4월 군사기밀 누설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장모(58·공군 대령 예편)씨 등 5명이다. 검찰 관계자는 "승진기술은 소규모 업체지만 한 해 매출은 10억원이 넘는다"며 "여직원을 빼면 최근 몸담았던 전·현직 임원 전원이 스파이 행각에 가담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빼낸 군사기밀은 '합동군사전략목표기획서(JSOP·2급)' '국방중기계획(3급)' 등 대부분 군의 전력 증강사업에 관한 것들이다. 여기에는 ▲북한 내 전략 표적을 정밀 타격할 수 있는 합동원거리공격탄(JASSM) ▲전투기에 탑재해 주·야간 표적을 탐지·식별하는 야간표적식별장비 ▲다목적 정밀유도확산탄 ▲중거리 GPS 유도키트 등의 도입 수량과 시기 등도 포함돼 있다. 검찰은 "이들이 군 선·후배나 친분 있는 현직 간부, 방위사업청 직원 등을 통해 2~3급 군사기밀들을 무더기로 빼냈다"고 말했다.

이렇게 빼낸 군사기밀을 영문 회의자료로 번역해 이메일로 보내거나 국내외 회의 때 록히드마틴 직원을 만나 직접 건넸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검찰은 "록히드마틴 임직원 3명에 대한 조사에서 이들로부터 넘겨받은 군사기밀을 자사 마케팅에 활용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고 전했다. 검찰은 김씨 등이 군사기밀을 넘겨주는 대가를 포함해 2009~2010년에만 록히드마틴으로부터 25억원의 수수료를 받았다며 승진기술이 설립된 1995년 이후 지금까지 수백억원대의 수수료를 받은 것으로 추정했다.

전 공군참모총장까지 군사 비밀을 빼돌렸다는 수사 결과가 나와 파문이 커지고 있다. JASSM(위) 확산탄(아래)등의 배치 운용과 관련된 주요 정보들이 술술 빠져나갔다.

◆군(軍) 기밀 유출 만연…간첩죄로 처벌해야

대법원에 따르면 2005년 이후 지금까지 6년반 동안 재판받은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자만 25건에 50명이 넘는다. 이들은 육·해·공군 본부나 방위사업청, 합동참모본부 등에서 군수(軍需)와 정보·작전 분야를 맡다가 예편한 뒤 우리 군의 미래 전략과 이에 필요한 다양한 신무기 도입 관련 기밀들을 빼냈다. 검찰 관계자는 "적발한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훨씬 광범위하게 만연돼 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50여명 가운데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고 전원 집행유예나 선고유예 등으로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미국이나 이스라엘 등 우방에 정보를 넘겨 현실적인 위험을 초래하지 않았다는 게 주된 이유다.

반면 미 해군 정보국에서 근무하던 재미교포 로버트 김(71·한국명 김채곤)씨는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 등 대북 정보를 주미 한국대사관에 넘겼다는 이유 등으로 징역 9년에 보호관찰 3년을 선고받았다.

이석수(48) 변호사는 "미국처럼 적국(敵國)에 정보를 팔지 않더라도 엄벌할 수 있도록 법관들이 발상의 전환을 할 필요가 있고, 법령 개편 등 제도적 보완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송민순 의원이 발의한 형법 개정안과 같이 적국이 아닌 외국 및 외국 단체에 기밀을 누설할 경우에도 간첩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국회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고위 공직자 출신이나 변호사들처럼 '전군(前軍)예우'를 막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대령 이상 예비역은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퇴직 후 2년 동안 퇴직 전 3년간 맡았던 업무와 관련된 일을 하지 못하게 돼 있는데 군사기밀을 다룬 경우에는 장기간의 특별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