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여행기 한 권이 여행 열 번 부럽지 않을 수도 있다. 터키에서 출발해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에 이르는 1만1000㎞ 도보여행기, 나는 걷는다(효형출판)의 저자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30년 언론인 생활을 은퇴한 뒤 길을 떠났다. 보고 즐기는 관광과 느끼고 생각하는 여행을 구분하면 많은 여행기가 사실은 관광안내기이지만 이 책은 진정한 여행기다.

"나는 다시 길을 떠났고, 조금 가다가 멈춰 휴식을 취했다. 눈을 들어보니 거북이 한 마리가 비탈길 위쪽에서 둥그런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안녕, 친구여. 미리 말해두지만 난 너와 경주하지 않을 거야." 우리의 삶은 거북과 경주하느라 늘 바쁘지 않았겠는가.

일상에서 벗어난 휴가 때 묵직한 화두와 마주해 보려면, 베이징대 부총장을 지낸 저명한 학자로 많은 중국인에게 존경받은 지셴린(2009년 98세로 작고)의 인생(멜론)이 제격이다. 문화혁명 때 장기 구금 상태에서도 산스크리트 서사시를 번역했던 그가 인생의 행운과 불행에 대처하는 자세는?

"행운과 불행은 서로 통한다. 행운이 찾아왔을 때는 불행이 올 것을 생각하여 지나치게 기뻐하지 말라. 또 불행이 왔을 때는 행운이 찾아올 것을 생각해 지나치게 낙심하지 말라. 치우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은 또한 장수의 비법이기도 하다." 건강한 몸과 바른 정신으로 장수한 이 어르신의 생각과 글은 담백한 나물 맛이다.

심장병 전문의이자 러너였던 조지 쉬언이 쓰고 소설가이자 러너인 김연수가 번역한 달리기와 존재하기(한문화)에서 달리기는 존재의 방식이자 영적 경험이다. 지금 달리는 이에게도, 멈춰 있는 이에게도 큰 울림으로 다가올 것이다. 저자는 진정한 삶을 살고 있는지 회의가 든 40대 중반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길을 달릴 때 나는 성자다. 그 시간만큼은 초라한 옷 몇 가지만 걸친 성자 프란체스코다. 길 위에서는 자연스럽게 가난과 순결과 순종이 따라온다."

의사 생활을 접고 전문 러너로 나선 지 5년 만에 50대 연령 1마일 세계신기록(4분47초)을 세웠지만 그에게 기록은 중요하지 않다. "진정한 운동선수는 변명하지 않는다. 순위와 상관없이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고 즐거워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낸다." "러너는 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달린다. 고통과 피로와 아픔을 견디며, 삶에 필요한 것만을 남겨놓으려 하면서 러너는 자신에게 충실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