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5년차 김00씨(32)는 언제부턴가 습관이 하나 생겼다. 동료들과 점심식사 후 항상 ‘가위바위보’로 커피내기를 하는 것이다. 순수하게 재미로 시작 한 ‘가위바위보’는 그 날 이후 멈추질 않았다. 커피내기에 진 사람은 늘 내일을 기약했고 짧은 순간 즐기는 짜릿함에 거절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김씨에게 "점심시간마다 즐기는 가위바위보가 일종의 도박행위인걸 아는지요?"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물론 대답을 바로 들을 순 없었다. 그도 무의식적으로 내기에 집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캔센터 자문심리학자 이흥표 교수는 "도박을 정의하자면 ‘결과가 불확실한 사건에 내기를 거는 행위’라고 할 수 있는데 김씨의 경우는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이에 명확히 속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도박은 가위바위보와 같은 작은 것부터 카지노, 경마 등 사행성 산업까지 그 범위가 생각 이상으로 넓다. 문제는 도박을 재미로 끝내지 못하고 깊게 빠져 현 생활을 유지하는 못하는 습관성 도박자들이 계속 생겨난다는 것이다. 인간은 이런 경쟁과 내기에 왜 중독되는 것일까? 그 원인을 도박의 역사에서부터 알아보자.
다음은 도박의 역사에 대해 이교수와 나눈 질의응답이다.
Q. 도박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나요?
A.도박의 역사는 인류의 탄생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원전 3500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집트 벽화에는 짐승의 복사뼈를 던지는 그림이 발견되었다, 선사시대의 유물로 발견된 복사뼈로 보아 약 4만 년 전부터 뼈를 던져(지금의 주사위 역할) 재물 확보의 기회를 잡거나 운명을 결정짓는 일이 있었던 걸로 추정된다.
Q. 도박의 역사를 이야기 할 때 보편적인 일화가 있다면?
A.일화라고 하면 바로 콜로세움 경기장이 먼저 떠오른다. 로마귀족들은 검투사들의 싸움을 보며 내기를 걸고 환호했으며 복권이나 전차 경주에 큰돈을 걸었다가 노예가 되는 사람도 많이 있었다.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는 제비뽑기도 이와 연관해서 이해할 수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논쟁이 벌어질 때나 재산을 가르고 나눌 때 제비를 뽑았다고 한다.
Q.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도박의 사료를 찾아볼 수 있는지?
A.우리나라 역사를 멀리 내려 가보면 삼국사기에 백제 개로왕 때 개로왕이 고구려 간첩승 도림과 바둑에 빠져 국사를 돌보지 않다가 나라를 망하게 했다는 최초의 기록이 남아있다. 경주 안압지에서 주령구(내기용 주사위)가 출토되기도 했다. 고려시대에는 투전과 척사(윷놀이)가 유행했으며 조선시대 패관문학서 대동야승에는 "바둑, 장기 등의 잡기를 너무 즐겨서 의지를 상실하는 자도 있었고, 재산을 손해 보는 자도 있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일제치하 때는 화투가 들어와 남자들을 무기력에 빠지게 했으며, 해방이후에는 미군이 주둔하면서 포커 게임이 지식층과 젊은이를 중심으로 퍼져나가기도 했다.
Q. 역사적으로 국가는 도박을 어디까지 허용해왔는가?
A.조선 영정조 시대 정약용의 목민심서에는 " 어떤 놀이를 막론하고 재물을 걸고 도박한 자는 장 80대에 처한다"는 기록이 있다. 숙종 때는 청나라에서 투전이 전해져 군졸들이 공금을 횡령하고, 노름판에서 뒷돈을 대주거나 꾸어주는 분전노, 설주(고리대금업자)들이 생겨나 폐해가 속출하자 대대적 단속을 벌이기도 했다. 포도청등록 등을 보면 1856년에는 투전의 폐해가 심하여 고종이 도박을 금지하는 전령을 거의 매년 내렸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고 하며, 조선말에는 화투가 급속히 퍼져 궁녀들까지 화투를 즐길 정도인지라 순종이 화투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고 한다.
이렇듯 모든 역사는 도박을 인정했다 불법화하는 극단적 선택을 하며, 동시대에도 어떤 도박은 인정하고 다른 도박은 인정하지 않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집트에서는 도박을 금지해 위반하면 노예형에 처했고, 1190년대 영국에서는 하루에 24실링 이상 걸지 못하게 귀족들이 도박을 금지하였으며 1377년 프랑스 의회에서는 카드게임을 금지하였고 1837년에는 모든 카지노를 불법화했다. 1910년 전 미국에서도 한 때 도박이 금지되기도 했다.
Q.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박이 계속 행해지고 발달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
A.그것은 음주나 섹스산업이 그러하듯이 도박이 인간의 원초적 욕망에 가장 부흥하는 사업 중의 하나이며 인간은 욕망 앞에서 의외로 취약하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인간은 전혀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며, 이성은 어리석기까지 하다. 예컨대 도박판 앞에서 인간의 이성은 자기가 항상 돈을 따거나 이길 수 있다고 착각하는 어리석음에 빠지기 쉽다. 그러므로 도박행위를 절제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개인의 몫에 달려있지만, 그 판을 어디까지 벌리고 용인할 것인가? 허용, 확장하거나 금지하며 조율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국가의 몫이라고 볼 수 있다.
인터뷰의 내용처럼 도박의 역사는 우리가 살아온 인류의 역사와 거의 다르지 않다. 도박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도박에 빠져있었는지, 우리 주위에 도박이 얼마나 퍼져있고 쉽게 접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인간이 도박을 포함한 욕망에 얼마나 취약한지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도박은 결코 나쁜 행위가 아니며 인간의 놀이이고 유희의 한 형태이며, 인간은 무엇에든 빠질 수 있다. 다만, 무엇이든 과도하거나 지나칠 때만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걸 막을 수 있고 예방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아는데서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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