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도이치뱅크는 지난 25일 인도인과 독일인 공동 CEO 체제를 선언했다. 은행경영과 장기전략 수립을 맡게 된 안슈 제인(48) 현 투자은행부문 책임자가 인도 출신이다. 그는 독일어가 서툴지만 최근 이 은행 순익의 가장 큰 몫을 벌어들인 점을 인정받았다.
미국·유럽의 다국적 기업이나 명문 비즈니스 스쿨의 수장에 인도인이 오르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인도의 최대 수출품은 CEO(최고경영자)' '경영의 새 트렌드는 인도에서 나온다'고 할 정도라고 시사주간지 타임(Time) 최신호가 전했다. 신용평가사 스탠다드앤푸어스(S&P)의 500대 기업 중 CEO들의 국적은 미국에 이어 인도(7곳), 캐나다(4곳) 순으로 많다. 포천(Fortune) 500대 기업 최고임원직 중에선 인도인이 13명인 데 비해 아시아 경쟁국인 중국은 본토와 미국계 중국인을 합쳐 4명에 불과했다. 또 미국 실리콘밸리의 정보통신(IT) 관련 벤처기업 중 절반은 인도인 소유다.
시티그룹의 비크람 판디트 회장, 펩시코의 여성 회장 인드라 누이, 모토로라의 공동회장 산자이 자, 크래프트 푸드의 산자이 코슬라, 구글의 최고사업담당 니케시 아로라, 워런 버핏의 투자사 버크셔 해서웨이 유력 후계자인 아지트 자인은 모두 인도 출신이다.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학장 니틴 노리아, 유럽 명문 경영대학원 인시아드의 학장 디팍 자인도 인도인이다.
벵갈지역 태생으로 서구교육을 전혀 받은 적 없이 거대 다국적 기업 수장에 차례로 오른 '방가 형제'는 전설적이다. 형 빈디 방가는 전 유니레버 회장, 동생 안자이 방가는 마스터카드 CEO다. 안자이 방가는 인도 전통 터번을 쓰고 다닐 정도로 출신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인도인들이 다국적 기업의 얼굴로 나서는 것은 인도가 인구 12억명의 거대시장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타임은 인도가 다(多)문화·다종교·다언어 토양 위에 수학 강국인 점이 맞아떨어져 글로벌기업 경영에 적합한 인재를 길러낸다고 분석했다. 영국 식민지였기 때문에 영어가 모국어와 같으며, 기후와 자원환경이 열악한 대신 인재 교육을 중시하는 데다 엘리트 계층도 경제적 약자에 대한 이해가 높다. 약점이 강점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특히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리더의 위기대처 능력과 도덕성이 중시되자 정신수련으로 단련된 인도인들이 각광받는 측면도 있다. 컨설팅업체 헤이그룹의 최근 연구에 의하면 인도 출신 CEO들의 자기 절제력은 가톨릭 사제·수녀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