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전남 장흥군 장흥우리병원을 찾은 산모 A씨(30)는 출혈이 심했지만 분만실로 향하지 못했다. 이 병원에서 운영해오던 산부인과가 1개월 전쯤 폐지됐고 분만실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장흥군에는 이 병원 외에 개인 산부인과 의원 두 곳이 있었다. 하지만 이 의원들 역시 분만실 없이 외래진료만 하는 곳이었다. A씨는 출혈에 대비한 간단한 처치만 받은 후 구급차에 태워져 광주광역시 조선대병원까지 1시간 50분이나 되는 먼 길을 달려야 했다. A씨는 "병원에 산부인과가 없어진 걸 그때는 모르고 있었다"며 "다급한 상황에서 광주까지 가는 고통이 너무 컸다"고 말했다.

분만실을 운영하는 산부인과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228개 시·군·구 중 분만실이 한 곳도 없는 지자체가 49개에 달했다. 5곳 중 한 곳 이상의 지자체 주민은 다른 지자체로 출산 원정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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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올해 3월 현재 전국의 산부인과 병·의원 3600개 중 분만실을 운영하는 곳은 634개(17.6%)에 불과했다. 3000개 가까운 '산부인과'가 분만실을 운영하지 않는, '산과(産科)' 없는 산부인과인 셈이다.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1년에 한두 건 마지못해 응급 분만을 받는 병·의원까지 포함하면 분만실 없는 산부인과는 훨씬 더 많다"면서 "수도권에서도 예전처럼 가까운 동네병원에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한다.

환자 없는 분만실, 운영할수록 손해

저(低)출산으로 인한 경영난에 의료 분쟁 위험도 큰 분만 업무를 아예 포기하는 산부인과가 늘고 있다.

문 닫는 분만실이 늘어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출산율 감소로 분만 건수가 줄었기 때문이다. 분만실을 운영할수록 적자가 쌓이는 산부인과 의원이 많아진 것이다. 한 달에 분만 환자를 20~30명은 받아야 손해를 보지 않지만 10명도 못 채우는 분만실이 수두룩하다. 최근 분만실 운영을 포기한 경기도 여주군의 한 산부인과 관계자는 "밤낮 구분이 없는 분만을 위해선 산부인과 의사 2명, 소아과·마취과 의사 각 1명씩이 필요하고, 간호사도 3교대로 최소 6명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여건을 갖추기는 매우 어렵다"면서 "특히 의료법·노동법 조항도 강화돼 개인 의원이 분만실을 운영하는 데에는 난점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정부가 자연분만 보험수가(酬價)를 지난해 25%, 올해 7월 1일부터 50% 가산해줬지만 이것으로 분만실 폐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시내의 한 산부인과 원장은 "한 달에 30건 정도 분만 업무를 하는 의원은 수가 인상에 따른 혜택이 크지 않다"며 "수가를 일률적으로 올려주는 것은 많은 산모를 확보하는 대형 병원에만 유리한 제도"라고 말했다.

분만 환자가 적은 지방의 작은 산부인과의 수가를 더 올려주는 '차등 수가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산부인과 전문의, 기본 숫자도 못 채워

산모와 태아의 건강이 걸려 있는 분만은 의료분쟁이 많은 분야이다. 근근이 분만실을 운영한다고 하더라도 의료분쟁을 겪으며 수억원의 배상금을 물어주게 되면 분만실 운영을 더 이상 하기 어려워진다고 의사들은 말한다.

이렇다 보니 우수한 의사들이 점점 산부인과를 외면하고 있다. 과거 250명에 달했던 산부인과 의사 정원이 올해 186명으로 줄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김상운 사무총장은 "자연분만 수가를 올려도 결국 '박리다매'식으로 분만을 하는 큰 병원 이외에는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라며 "의료사고 위험을 국가가 감당해주는 등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