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할 줄 모르는 끈질김'과 '결속력.'
대지진 피해로 신음하던 일본 열도가 독일과 스웨덴에 이어 미국까지 누르고 세계 정상에 오른 여자 축구 대표팀에 열광하며 역경에 굴하지 않는 선수들의 용기를 배워야 한다는 찬사를 쏟아내고 있다.
오전 3시 45분(한국 시각)에 시작된 미국과의 결승전을 응원하기 위해 일본 각지의 스포츠 바 등에서 밤을 새워 응원하는 시민들이 적지않았다. 새벽 도쿄 시부야 거리에는 젊은이들이 쏟아져 나와 길거리 응원을 펼치기도 했다. 일본이 승부차기 끝에 극적인 승리를 거두자 시민들은 "대지진 피해를 이겨나갈 용기를 준 선수들에게 감사하다"며 감격했다. 일본 각 신문은 호외를 쏟아내며 승전보를 전했다. 기타자와 도시미 일본 방위상(防衛相)은 "대지진 복구에 좋은 메시지를 주었다"며 "일본 정계도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여자 선수들처럼 결속력과 끈기를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본 여자 대표팀은 18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2011 FIFA(국제축구연맹) 여자 월드컵 결승에서 세계 최강인 미국과 연장까지 2대2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3대1로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아시아 팀이 거둔 첫 우승이다. 아시아 팀의 역대 최고 성적은 1999년 중국이 거둔 준우승이었다.
제프 블라터 FIFA 회장이 "36년 동안 FIFA에서 일하면서 이 경기보다 더한 충격은 없었다"고 말할 만큼 일본의 승리는 이변이었다. 일본은 역대 전적 3무21패로 절대 열세이던 미국에 슈팅 수 14대27, 코너킥 4대8로 밀렸다.
대부분 키가 160cm 안팎인 일본 선수들은 10cm 이상 키가 크고 조직력이 뛰어난 미국 선수들을 상대로 빠른 패스워크와 지칠 줄 모르는 체력, 몸을 던지는 투혼으로 접전을 벌였다. 일본은 후반 28분 선제골을 내줬으나 36분 동점골을 뽑아냈고, 연장에서도 전반 14분 골을 내준 뒤 경기 종료를 얼마 남기지 않은 후반 12분 주장 사와 호마레(33)가 코너킥 상황에서 공의 방향만 바꾸는 절묘한 슈팅으로 다시 동점을 만들었다.
1993년부터 18년 동안 대표팀에서 뛰며 다섯 번째 월드컵에 출전한 '일본 여자 축구의 살아 있는 전설' 사와 호마레는 이 대회 5골을 기록하며 우승과 함께 골든볼(MVP), 골든부트(득점왕) 등 트리플 크라운을 이뤘다. 사와에게 총리가 수여하는 '국민영예상'을 줘야 한다는 일본 내 여론도 높다. 사와는 이번 결승전에서 국가대표 172번째 경기에 80번째 득점을 이뤘다.
일본 여자 축구는 1·2부와 지역 리그로 나누어진 실업리그를 갖추고 있고, 등록선수도 2만5000명이 넘는 등 한국보다는 훨씬 두꺼운 저변을 갖고 있다. 하지만 등록선수 100만명에 프로 리그를 갖춘 독일이나 여자 축구 인기가 높은 미국에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일본 선수들은 주요 경기를 앞두고 대지진 피해 영상을 보며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자"고 결의를 다졌다. 주장 사와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그들은 한 번도 이기지 못했던 독일과 미국에 끌려가는 경기를 하면서도 승리를 거두는 감동의 드라마를 썼다.
극도의 개인주의와 사회 구조적 문제로 활력을 잃고 있는 일본 사회는 최근 드라마와 소설 등에서 '역경에 굴하지 않는 정신'과 '결속력' 등 잘나가던 시절의 전통 가치를 부각시키고 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악착 같은 승부 근성으로 기적 같은 우승을 거둔 일본 여자 대표팀에 일본 사회가 더욱 환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본 네티즌들은 "유약한 '초식남(草食男)'이 늘어나면서 힘을 잃어가던 일본은 이제 매사에 적극적이고 당당한 '육식녀(肉食女)'의 활약에 기대를 걸어야 한다"며 "여자 축구 대표팀이 바로 그 대표적 사례"라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