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소설가라면 어떨까.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보드게임'에 품은 포한(抱恨) 때문에 꼭 한 번 소설로 써 봐야겠다고 결심한 작가, 일산 집에서 서울 나들이갈 때 이용하는 1000번 좌석버스 맨 뒷좌석에 앉아 팝송 흥얼거리듯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며 소설을 쓰고, 자신의 소설에 삽화를 직접 그린 미국 작가 커트 보네거트(Vonnegut)를 부러워하다 '나도 한 번!'이라며 실천에 옮기는 사내. 김중혁(40)은 그런 작가다. 문학은 자신에게 '목매달아 죽어도 좋을 나무'가 아니라 '즐거운 놀이'라고 믿는 이 나이 마흔의 '철부지 작가'가 이 세 가지 꿈을 모두 이룬 소설을 썼다. 영화로 비유하자면 한 편의 로드 무비이고, 문학적으로 구분하자면 청소년 성장소설에 더 가까울 작가의 두 번째 장편 '미스터 모노레일'(문학동네 출간)이다.
"지난해 펴낸 첫 장편 '좀비들'이 너무 무거워서 이번에는 좀 밝은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문학은 지금 나를 즐겁게 만드는 도구입니다. 글을 쓸 때마다 내가 확장되어가는 느낌이 좋아요. 솔직히 2000년 등단할 당시만 해도 문학은 스스로를 알리고 싶은 도구였지만 지금은 내가 즐겁기 위해 씁니다. 그리고 내 독자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소설을 쓰죠."
사회적 책임으로서의 문학이나 순수문학 특유의 엄숙함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이 작가는 '문단의 호모 루덴스'(유희하는 소설가). 문학계의 어느 주요한 어느 흐름에도 상관하지 않고 구석에 앉아 홀로 자신만의 쾌락을 좇는다. 소설뿐만이 아니다. 2000년 '문학과 사회'로 등단한 뒤에도 그는 축구·여행·음식 전문 잡지의 기자를 하며 자신만의 취향을 살찌웠고, 요즘은 홍익대 상상마당에서 열리는 인디뮤지션 쇼케이스(발표회)의 사회, 인터넷 문학라디오방송 PD 등으로 장르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어쩌면 이번 장편 '미스터 모노레일'은 그 유희적 세계관의 결정판이다. '주사위 게임의 기본 법칙은 승부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이 이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사위 게임에서 이기려면 진정으로 지고 싶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65쪽)는 소설 속 인용처럼 특유의 능청과 따뜻한 감성으로 자신만의 주사위를 연속해서 던진다.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소년 모노가 만든 유럽 여행 보드게임 '헬로, 모노레일'과 이 세상은 둥근 볼(Ball)로 이루어졌다는 신흥 종교 '볼교'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모험과 상상력의 롤러코스터다.
이번 작품에서 작가는 표지 일러스트와 내용 삽화를 직접 그렸다. 보드게임 '헬로, 모노레일'의 주인공인 블루, 핑크, 블랙, 레드, 화이트 캐릭터와 괴수영화 주인공을 닮은 기차 승무원 펀치 등이다. 고등학교 때 그의 꿈은 화가. 하지만 하나뿐인 형이 먼저 미대생을 '선점'했고, "한집안에 미대생 두 명은 힘들다"는 아버지의 엄포에 무릎 꿇고 국문과에 진학했다. 자식 둘을 모두 예술가로 키운 우수한 유전자를 물려줬으나 형제 모두를 미대에 진학시키지는 않았던 이 경상북도 김천의 현실적 아버지에게 박수를. 그가 조금만 더 관대했다면 우리는 이 재기 발랄한 소설가를 만나기 어려웠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