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빙더(陳炳德) 중국 인민해방군 총참모장이 14일 김관진 국방장관과 면담하면서 15분 동안 미국 비난 발언을 쏟아낸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오는 8월이면 수교(修交) 19년을 맞는 한·중 관계에서 중국 고위 인사가 이런 발언을 공식적으로 한 경우는 거의 없다. 중국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사석(私席)에서조차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일장 훈시하는 중국 군부
천 총참모장은 중국군의 최고위급 인사다. 김 장관은 작년 3월 천안함 폭침(爆沈) 사건 이후 처음으로 베이징을 찾은 한국 국방장관이다. 천 참모장은 다음 날로 잡힌 한중(韓中) 국방장관 회담을 앞두고 김 장관에게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해 일장 훈시를 늘어놨다. 그의 발언은 한·미 동맹, 더 나아가 미국을 바라보는 중국 군부의 생각을 담고 있다는 평가다.
중국은 이제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 잡았고,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주요 2개국(G2) 대접을 받고 있다. 여기에 맞춰 중국의 군사 분야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중국의 국방비는 지난 2003년부터 2009년까지 해마다 10% 이상 늘어났다. 지난 1월 중국 인민해방군은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의 베이징 방문에 맞춰 중국의 최첨단 스텔스기 '젠(殲)-20'을 시험 비행했다. 또 최근 방중(訪中)했던 마이크 멀린 미 합참의장에게 항공모함 보유 계획을 털어놓기도 했다.
중국 군부는 최근 들어 '미국의 패권주의'를 공개 비판하는가 하면, 남(南)중국해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과 영토 분쟁을 일으키고, 또 미국에 대한 불편한 심사를 그대로 드러내는 일이 잦아졌다.
한반도에서도 마찬가지다. 작년 천안함 사건 후 한·미가 미국 항모(航母)가 참가하는 합동 훈련을 실시하려 하자 중국 군부는 공개적으로 비난 공세를 퍼부었다. 마치 서해가 중국의 내해(內海)인 듯한 행동을 보였다. 중국 군부는 작년 천안함·연평도 사태 이후 한·미가 예전보다 훨씬 강도 높은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것을 '중국에 대한 위협'으로 보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군부의 정서를 그대로 드러낸 게 천 참모장의 발언이라는 것이다.
◆중국 군부 존재 의미 부각
중국 군부는 중국 지도부 내에서 '북한·중국 동맹을 계속 유지·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원지이기도 하다. 중국 내에서 대(對)북한 정책의 변화를 모색할 때마다 제동을 걸거나, 북한의 후견인 역할을 자처하고 나서는 집단이 중국 군부라는 것이다. 중국 인민해방군의 최고위 간부들은 여전히 6·25전쟁 당시 북한군과 힘을 합쳐 미군과 싸웠던 전통을 강조한다. 올해 70세로, 1961년 군에 입대한 천 참모장은 이런 세력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1990년대 육군학원원장 등 요직을 거쳐 2004년 중앙군사위원으로 발탁된 후 2007년부터 현직을 맡고 있다.
중국 군부는 내년에 5세대 중국 지도부가 출범할 때 영향력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성신여대 김흥규 교수는 "중국 군부는 현재 국력이 상승하고 있을 때 목소리를 강하게 냄으로써 군대의 존재를 부각하고 영향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했다. 이런 중국 군부의 강성 기조(基調)는 중화(中華) 사상을 연상케 하는 '중국 우선주의'로 치닫는 중국 내 여론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중국은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 이후 '세계 유일 초강국으로서 미국의 지위'가 흔들리는 기미를 보이자 자국 주장을 거침없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중국이 이렇게 나오면 나올수록, 한국에 대해선 고압적 태도를 취하면서 한·미 동맹을 흔들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맥락에서 천 참모장의 발언은 '중국판 강대국 외교'의 전조(前兆)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