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네트워크 장비회사인 시스코가 약 1만명의 대규모 감원을 준비하고 있다. 이는 전체 직원 중 14%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시스코의 26년 역사상 최대 규모다.

12일 블룸버그는 복수의 관계자를 인용해 시스코가 8월 말까지 7000명을 정리해고하고, 나머지 3000명은 조기 퇴직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약 1만명의 인력을 감원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시스코 측은 지난 5월 직원 감원이 회계연도 2012년에 약 10억달러(약 1조원)의 비용 절감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조기 퇴직의 경우 올 4분기부터 약 5억~11억달러의 비용을 줄일 것으로 전망했다.

◆ 주니퍼…HP… 시스코 핵심 매출원 뺏어가

시스코가 이처럼 대규모 감원에 나서는 이유는 주니퍼나 HP 같은 경쟁사들이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핵심 사업부문에서 치고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스코의 지난해 매출 가운데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라우터(인터넷 접속장비)와 네트워크 스위치 판매량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델오로그룹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올 1분기 시스코의 라우터 전 세계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4%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시스코의 라우터 시장 점유율은 54.2% 수준으로 낮아졌다. 이 기간 주니퍼는 점유율을 늘렸다.

1분기 스위치 판매량 역시 5.8% 줄었다. 이런 영향으로 시스코의 전 세계 스위치 시장 점유율은 68.5%로 떨어진 반면, 경쟁사인 HP는 같은 기간 점유율을 늘렸다.

◆ “고객들 신뢰 과거 수준으로 회복하는 게 경영의 핵심”

시스코는 감원 외에도 수익성이 적은 사업을 정리하는 구조조정을 준비하고 있다. “잃어버린 회사의 신용도를 회복하고, 회사가 집중해야 할 부분에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존 체임버스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다.

시스코는 이미 5월 플립(flip) 비디오 카메라 사업을 중단하기로 선언하고 550명 정도의 직원을 감원한다고 발표했다. 시스코는 이를 시작으로 소비자 제품 사업을 재정비한다는 전략이다. 시스코 투자자들 역시 회사 측이 소비자 제품 사업에서 완전하게 손을 떼고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 왔던 기업용 제품인 라우터와 스위치 판매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시스코는 사업부 정리와 성장동력 발굴에 집중하기 위해 경영진 물갈이에도 나설 전망이다. 의사결정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회사를 지역을 기준으로 크게 세 덩어리로 나눠 경영진을 정비하고, 지방 의회 같은 체계로 회사 구조를 개혁한다는 것이다.

시스코는 지난 2월 회계연도 2분기 순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 감소했다고 발표했었다. 주가도 올해에만 24% 하락했다. 같은 기간 시스코가 상장해 있는 S&P500 지수가 4.9%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굴욕적인 실적이다.

이와 관련 체임버스 회장은 지난 4월 직원들에게 보낸 반성의 편지에서 “시스코는 그동안 의사결정 과정이 지나치게 느렸고 실행에 게을렀으며, 사업 확장에 대한 원칙도 부족했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 경영의 핵심은 잃어버린 고객들의 신뢰를 과거 수준으로 회복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