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8시 10분쯤 제주시 용담동 제주중학교(교장 변종현). 교정 전체에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합창곡으로 유명해진 '넬라판타지아'가 울려퍼졌다. 등교 시간이라 어수선했던 학교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각 교실 책상 앞에 앉은 920여명의 학생들은 자연스레 책에 빠져들었다.

제주중이 올해부터 새로 시작한 'BOOK소리' 프로그램이 운영되면서 달라진 아침 풍경이다.

'BOOK소리'는 아침 20분 동안 책을 읽는 것으로 하루를 열어 독서 습관을 기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2학년 강한성(14)군은 "수업 전과 쉬는 시간을 이용해 책을 읽으면 수업시간에 더 집중하게 된다"며 "항상 책을 가까이 하다 보니 일주일에 5~6권을 읽고 있다"고 말했다.

'BOOK소리' 프로그램은 단순히 책을 읽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독후감을 독서기록장인 '북소리'에 채우고 있다. 독서기록장은 요약글과 느낀점, 인상적인 장면, 나를 변화시킨 장면 등 독후감을 단계별로 쓸 수 있도록 학교가 제작했다. 또 교실마다 '방방문고(학급문고)'가 설치됐다. 학생들이 갖고 다니는 책이나 매달 15일 도서관에서 대출한 40권의 책을 손이 쉽게 닿는 교실에 비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제주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오전 8시 10분부터 시작되는‘Book 소리’시간에 자신들이 읽는 책을 들어보이고 있다.

제주중의 책읽기 프로그램은 2000년부터 시작됐다. '가방 속 책 한 권' 갖고 다니기 운동이 첫 출발이었다.

이현미 수석교사는 "10여년 동안 권장도서 목록을 작성해 국어수업은 인사 대신 책을 읽는 것으로 시작했다"며 "남학생들에게 책을 읽는 습관이 부족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 교사들이 공감해 'BOOK소리'를 특수시책으로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립학교(아남학원·이사장 강영민) 특성상 교사들의 열의가 있었기에 'BOOK소리'가 자리를 잡은 것이다.

'책 읽기'가 학교생활의 일부가 되면서 1만여권 도서를 보유한 도서관에도 활기가 돌았다. 학부모로 구성된 사서는 날마다 새로운 '시(詩)'를 내걸어놓고 학생들을 기다렸다. 수요일마다 책을 읽어주고, 영화를 보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퀴즈와 게임으로 신나게 놀 수도 있는 '수요데이(Day)' 행사로 학생들 흥미를 돋웠다.

올해에는 3개의 이색 책읽기 모임도 생겼다. 교사들의 독서모임 '책 읽는 소리'와 주민독서모임 '책마루', 학부모 독서모임 '책마루'가 그것이다.

교무실에는 수달(수업의 달인) 문고를 설치하고, '책읽는 소리'를 통해 책에 대한 정보는 물론 수업과 상담을 통해 학생들에 대한 정보도 공유하고 있다. 학교가 위치한 용담동에 공공 도서관이 없는 것을 감안해 학교 도서관을 주민과 학부모에게 '문화 사랑방'으로 개방하고 있다.

이번 주말에는 여름방학에 앞서 '나는 작품이다'라는 이름으로 독서캠프가 열린다. 도서관에서 1박2일 동안 머물며 '10대에 만났으면 좋은 인물'에 대한 책을 읽고 학생 자신들의 '미래 자서전'을 쓰는 자리다.

오는 9월 넷째 주에는 격년제로 열리는 '책축제'도 예정돼 있다. 독서 관련 작품 전시와 독서토론, 인문학 강좌 등 학교 전체가 거대한 체험 도서관으로 변신한다.

변종현 교장은 "신입생들에게는 우수도서를 선물하고 있고, 학년 말에는 '2050(20분 독서로 50권 읽기)'을 평가해 목표를 달성한 학생에게 시상할 계획"이라며 "교육청 차원에서도 독서문화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