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관객에게 환영과 환상을 준다. 배우의 연기나 카메라 놀림에 의존하던 그 환영과 환상의 '속임수'는 이제 첨단과학을 이용한 컴퓨터그래픽(CG)과 특수 촬영으로까지 발전했다.
한국 영화의 특수 촬영도 할리우드를 베끼거나 빌려오는 수준에서 시작해 이제는 독창적인 개발 수준으로까지 발전했다. 한 영화제작자는 "예전에는 할리우드에서 빌려오는 장비에 맞춰 각본까지 바꿔야 했지만 이제는 우리가 각본에 맞춰 필요한 장비를 만드는 단계까지 진입했다"고 했다. 올여름 한국 영화계의 특수촬영 '진화'를 체감할 수 있는 블록버스터 세 편이 개봉된다. '퀵' '고지전' '최종병기 활'이다. 어떤 특수촬영 장비와 기법이 개발돼 쓰였는지 알아본다.
①가마캠
'고지전'(20일 개봉)은 6·25 전쟁 후반 동부전선 최전방 애록고지를 놓고 벌이는 전투를 그렸다. 6·25 자료사진을 그대로 본떠 산에 50~100㎝ 너비로 판 '교통호'(참호와 참호를 이어주는 좁은 통로)가 문제였다. 너무 좁아 배우들만 간신히 들어갈 수 있을 뿐 촬영장비는 설치 자체가 어려웠다. 이전 한국영화들처럼 실제보다 2~3배가량 넓게 파는 등 리얼리티를 줄이는 방안이 나왔지만 장훈 감독은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촬영장을 실제 전장과 같이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감독의 고집이 파이프 두 개를 十자로 용접해 그 아래에다 카메라를 단 '가마캠'을 탄생시켰다. 가마를 거꾸로 엎은 모양과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스태프 네 명이 가마꾼처럼 파이프의 네 끝을 잡고서 카메라를 움직이므로 아무리 좁은 공간의 화면이라도 촬영해 낼 수 있다.
②전봇대 와이어캠
고지전은 경남 함양 백암산을 통째로 촬영 장소로 활용했다. 백암산이 2년 전 큰 산불로 민둥산이 돼버려 매일 포탄과 총알을 맞는 전쟁터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났기 때문이다.
문제는 백암산의 경사가, 일부 지역은 사람이 서있기조차 힘들 정도로 심해 영화촬영에 큰 지장을 줬다는 점. 고지를 향해 진격하는 군인들의 모습을 공중에서 촬영 하려면 '와이어캠'(wire cam·철사에 매달아 공중에 띄워서 촬영하는 카메라)을 사용해야 하는데 카메라를 지탱하는 크레인 등 중장비를 산으로 들여오는 게 어려웠다는 후문이다. 외국에서 와이어캠을 수입해 영화사에 대여하는 업체들도 모두 고개를 가로저었다. 고지전 팀은 고민한 끝에 '전봇대 캠'을 자체 개발했다. 고지의 꼭대기와 아랫부분에 각각 전봇대를 심어놓고 그 사이에 철끈과 도르래를 걸어 카메라를 매다는 방식이다. 카메라의 속도감을 살리기 위해 스태프들이 양쪽에서 줄을 잡아당기면 카메라가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도록 했다.
③프로펠러 와이어캠
조선 병자호란 때의 신궁(神弓) 이야기를 담은 '최종병기 활'(다음 달 11일 개봉) 제작팀은 시속 300㎞ 정도 속도로 날아가는 화살의 느낌을 구현하기 위해 '프로펠러 캠'을 사용했다. 기존 '와이어 캠'에 두 개의 프로펠러를 매달아 캠이 움직이는 속도를 화살이 날아가는 수준에 버금갈 정도로 높인 것이다. 카메라를 공중에 매다는 줄은 기존 200m짜리 와이어가 아닌 600m짜리 특수 자일(암벽 등반을 할 때 사람을 매다는 로프의 일종)을 사용했고, 최대한 높은 곳에서 촬영하기 위해 고공 크레인을 이용해 특수 자일의 양쪽 끝을 잡아줬다. 카메라의 움직임은 무선으로 조종했다.
④무선 리모트 컨트롤 촬영
자동차가 폭파돼 박살이 나거나, 시속 100㎞ 이상 달리다가 충돌하면 아무리 숙련된 스턴트맨이더라도 목숨을 잃기 십상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국내 영화의 자동차 액션 신은 스턴트맨이 운전해 최대 시속 60㎞ 수준으로밖에는 촬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스피드 액션 영화 '퀵'(20일 개봉)에는 자동차가 반으로 갈라지거나 공중에서 뒤집혀 부서지는 등 기존 자동차 액션 영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과격한 장면들이 여러 번 등장한다.
해법은 운전자 없이 자동차를 조종하는 무선 리모트 컨트롤 장비였다. 퀵의 홍장표 특수촬영감독이 찾아냈다. 영화에 등장하는 차에는 사람이 한명도 타지 않은 채 수신기만 설치해 두고, 뒤따라 가는 차에 리모트 컨트롤을 설치하고 운전자가 탄다. 뒤차 운전자가 운전하는 대로 무선으로 신호를 보내 앞차를 조종하는 것이다.
개당 3000만원 하는 독일제 수신기 3개를 구입했고, 송신기나 모터 등 차량에 달아야 하는 각종 부품은 일본, 미국 등지에서 따로 구입해 홍 감독이 직접 개조해 만들었다. 일단 촬영을 시작하면 고가의 수신기도 자동차와 함께 산산조각이 나기 때문에 촬영 전 열흘 정도 자동차가 날아가는 각도와 높이를 조절하는 연습을 해 한 번의 시도로 촬영을 마쳤다고 한다.
⑤도기캠(Doggiecam)
'퀵'은 오토바이 액션을 찍는 데 한국에서 처음으로 '도기캠'을 썼다. 주인공 한기수(이민기)가 시속 150~200㎞로 달리는 것을 촬영하는 데 주로 썼다. 도기캠은 카메라 종류가 아닌 회사 이름이지만, 국내에서는 편의상 차량에 장착해 촬영하는 카메라를 통칭한다. 지금까지 자동차 추격장면을 찍을 때 사용한 '슈팅카'는 촬영 스태프가 10여명 올라탔기 때문에 시속 70~100㎞의 속도밖에 낼 수 없었지만 도기캠은 차종에 따라 시속 200㎞ 이상을 달리는 차도 근접촬영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