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괄적으로 세비(歲費) 10% 삭감', '세비 자동 인상 조항 폐지', '예산안 처리 시한 못 지키면 25% 삭감'….

미국에서 의회 의원들의 세비를 삭감하거나 동결하려는 움직임이 경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시민단체 등이 주도하는 게 아니다. 의원들이 자발적으로 이런 아이디어를 내고 있는 것이다. 의회 소식지 '더 힐'에 따르면 올해 들어서만 의원들이 자신들의 수입을 동결·삭감하자는 내용의 법안을 제출한 게 18건에 이른다.

"경제난에 의회가 솔선수범"

미 의원들은 1989년 이후로 매년 물가상승률이 반영된 세비를 받아왔다. 별도의 반대 투표가 없는 한 세비가 자동으로 인상되는 구조다. 의원들은 이미 투표를 통해 2010~2012년 세비를 동결한 상태이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고 향후 '자동 인상 규정'을 아예 폐지하거나 동결이 아닌 삭감으로 가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미 의원들이 스스로 이런 움직임에 나선 것은 물론 경제난 때문이다. 전반적인 불황으로 국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고, 또 정부 부채의 증가로 의회가 각 행정부처에 예산 삭감을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자신들이 먼저 국민 세부담을 줄여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의원들의 세비가 삭감된 것은 대공황 당시인 1933년이 마지막이다.

클레어 매카스킬(민주·미주리) 상원의원은 "많은 미국인이 일자리를 잃었고 일을 하는 사람들도 연봉 인상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만 자동적으로 인상된 돈을 챙길 이유가 없다"고 했다. 클리프 스턴스(공화·플로리다) 의원은 "올해 재정적자가 1조5000억달러라는 것은 의회가 할 일을 못했다는 것이고, 일을 못하면 월급 인상이 없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의원들이 이미 적지 않은 돈을 받고 있는 데 대한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상·하원 의원의 세비는 연간 17만4000달러(약 1억8600만원)다. 각 당의 원내대표는 19만3400달러(약 2억700만원), 하원의장은 22만3500달러(약 2억3900만원)를 받는다.

세비, 깎고 동결하고 보류하고

의원들의 세비 삭감·동결 아이디어는 다양하다. 우선 '자동 인상 조항 폐지'는 5명이 각각 법안을 제출한 상태다. 상원에서 매카스킬과 데이비드 비터(공화·루이지애나), 하원에서 짐 매테슨(민주·유타), 토드 플래츠(공화·펜실베이니아), 밥 라타(공화·오하이오) 의원이 나섰다. 이들은 세비 인상이 필요할 때는 반드시 투표를 거치도록 규정했다.

올 초 머리에 총격을 받고 회복 중인 가브리엘 기퍼즈(민주·애리조나) 의원은 '5% 삭감' 법안을 내놨다. 기퍼즈 의원의 대변인은 "세비를 깎는 방안 이외에 더 나은 방법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2013년에 460만달러의 국민 세부담이 줄게 된다.

제이미 헤레라 버틀러(공화·워싱턴) 의원은 한발 더 나아가 2013년 의원 세비와 대통령·부통령 연봉까지 모두 10% 깎자는 법안을 제출했다. 그는 "우리 연봉을 10% 줄인다고 해도 정부 재정 상태에 별 영향은 못 미치겠지만 이게 최소한의 도리"라고 했다.

랜디 헐트그렌(공화·일리노이) 의원은 초선다운 독특한 아이디어를 냈다. 그의 법안은 의회가 다음 회계연도 예산안 처리 시한을 넘기면 의원 세비를 25% 깎고 법안을 처리할 때까지 세비 지급을 보류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