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어린이들의 겉모습은 아프리카 빈민가 아이들처럼 충격적이지 않다. 그래서 구호기관의 후원자도 드물다. 하지만 이 어린이들도 관심의 사각지대에서 고통을 겪는 것은 마찬가지다. 몽골에는 안전모도 없이 광산에서 일하고, 맨홀 속에 들어가 새우잠을 자는 아이가 부지기수다. 최근 도시 빈민이 증가하면서 어린이 학대와 노동 착취는 더 심해지는 추세다. 초원의 나라 몽골에도 우리 손길을 기다리는 아이들은 분명히 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지난 22일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군트(Gunt)지역엔 아침부터 비가 왔다. 벽돌로 지은 4층짜리 고아원 '로뎀의 집'에 사는 여섯 살 꼬마 오트공졸은 "비를 몰고 온 귀한 손님들"이라며 가수 이기찬씨가 동행한 월드비전 구호팀에 바이올린 연주를 선물했다. 3년 전 교통사고로 오른쪽 무릎 아래를 잃은 아이는 서툰 솜씨로 모차르트의 '반짝반짝 작은별' 변주곡을 연주했다.

오트공졸은 "아빠한테 자랑하려고 열심히 연습하는데 실력이 늘지 않아서 고민"이라고 했다. 아빠 바트이르튼(43)은 300㎞ 떨어진 다르항교도소에 복역하고 있다. 지난 2008년 술에 취해 한 살 된 아들을 벽에 집어던져 숨지게 했고,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사람이다. 그런 아빠지만 꼬마에겐 여전히 그리운 아빠일 뿐이다. 오트공졸은 세 살 때 아빠를 찾아 집 밖으로 나갔다가 차에 치여 다리를 잃었다. 아이는 아직 아빠를 원망할 줄도 모른다.

몽골 울란바토르시 외곽에 있는 무연탄 광산지대에서 일하는 어린이가 석탄을 캐는 도구를 들고 걸어가고 있다. 이들은 안전모나 마스크도 쓰지 않고 일한다. 불법 개인광산인 이곳에서 어린이들은 생계를 위해 석탄을 캔다.

엄마까지 집을 나가버린 뒤 이 세상엔 오트공졸을 포함해 다섯 남매만 남았다. 첫째 이르튼(14)과 둘째 이르튼바야르(11)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아이들은 길거리의 쓰레기통을 뒤져 허기진 배를 채우며 한 달을 버텼다. 2008년 6월 경찰이 다섯 남매를 이 고아원으로 보냈을 때 심한 영양실조로 피부는 부스럼투성이었고 악취가 진동하는 머리에는 이가 득실거렸다고 한다. 고아원에서 아이들은 차츰 안정을 찾았다. 첫째와 둘째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셋째 조뜨(여·10)는 3년 내내 수학에서 A학점을 놓치지 않는 우등생이다.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았던 막내 바트바야르(5)는 작년에야 처음 걷기 시작했다.

지난해 다섯 남매는 고아원 원장님을 졸라 아빠를 만나러 갔다. 아이들은 죄책감에 시달리며 감옥에서 수차례 자살을 시도했던 아빠를 끌어안았다. "빨리 나와서 같이 살아요"라는 말을 듣고 아빠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떨어졌다.

아이들은 요즘 아빠와 수시로 전화와 편지를 주고받는다. 첫째 이르튼은 "우리 가족이 남들처럼 다 같이 모여 살게 될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음날 월드비전 구호팀은 동행한 가수 이기찬씨가 최근 후원을 맺은 나랑게렐(6)이 사는 울란바토르 부근 날라이흐로 향했다. 자갈길을 달리는 취재진 차량 옆으로 우물에서 물을 길어 외발수레에 싣고 가는 아이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몽골 80%의 지역에는 상수도시설이 없어 우물 등에 의존해서 살고 있다. 깨끗한 식수를 마시는 사람은 전체의 62%에 불과하다. 전날 내린 빗물로 물바다로 변한 도로에서 아이들은 힘겹게 걸음을 떼고 있었다.

언덕 꼭대기에 있는 나랑게렐 가족의 게르(Ger·몽골의 전통 이동식 천막)에도 물 양동이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식수로 쓴다고 했다. 누렇게 변해 있는 천막 지붕 위는 천뭉치와 나무판자가 덧대져 있었다. 낯선 사람들을 보고 개가 짖어대자 집 안에 있던 나랑게렐과 형제들, 어머니 바트(34)가 밖으로 나왔다.

한눈에 나랑게렐을 알아본 이씨가 '센 베노(안녕)'라고 몽골말로 인사를 건네자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큰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씨는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려 품에 안았다.

'햇살'이란 뜻의 나랑게렐이 사는 5㎡ 남짓한 이 천막은 낮에도 전등을 켜야 할 만큼 어두웠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곰팡내가 코를 찔렀다. 1년 전 남편이 광산작업 중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후 바트는 정부보조금과 이웃집 농장일을 거들어주고 받는 일당, 빈 병을 모아서 판 돈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4년 전 한국인 후원자를 만난 큰딸 나루체(10)에 이어 나랑게렐도 한국인에게 도움을 받게 됐다. 한국인들에게 감사드린다"고 했다.

이씨는 아이에게 학용품을 선물하고 직접 준비한 티셔츠도 입혔다. 엄마는 "어젯밤 설렘 때문에 아이가 새벽 2시까지 잠을 못 잤다"며 "오늘도 6시에 일어나 집 안을 청소했다"고 말했다.

나랑게렐의 가족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길. 이씨는 "후원하는 아동을 직접 만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이제야 알겠다"고 했다. 그는 "크리스마스와 아이 생일에 꼭 다시 찾아오고 싶다"고 말했다.

언덕을 한참 내려와 차에 타려는데 멀리서 아이가 뛰어내려 왔다. 아이는 숨을 헐떡이며 달려와 이씨의 등을 와락 껴안았다. 아이는 이씨에게 하고 싶은 말을 그렇게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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