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한 청춘, 불안한 30대, 분배와 대안."

올 상반기 한국사회를 장악한 3대 키워드였다. 본지가 국내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 4곳(교보·영풍·예스24·인터파크)의 상반기 판매량을 취합해 1위부터 200위까지 종합 순위를 매기고, 전문가 자문단 6인의 토론을 통해 베스트셀러에 나타난 사회심리를 분석한 결과다. 자문단은 "우리 사회에 팽만한 불안과 분노가 생생하게 드러났다"고 입을 모았다.

조사 기간(1월1일~6월15일)을 통틀어 가장 많이 팔린 책은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쌤앤파커스)였다. 좌절한 20대에 공감한 이 책 한 권은 같은 세대를 향해 "노력하고 도전하라"고 독려한 책 9권을 합친 것보다 두 배 가까이 더 팔렸다(31만4996권〉18만5018권).

2위는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 3위는 일본인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의 '생각버리기 연습'(21세기 북스)이었다. 자문단은 "'아프니까…'가 88만원 세대의 감성을 뒤흔들었다면, '정의란…' 돌풍은 한국인 대다수가 '우리 사회는 정의롭지 못하다'고 분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면서 "이런 분위기 속에 번뇌 끊는 요령을 가르친 '생각버리기…'가 큰 호응을 얻었다"고 했다. 실제로 '아프니까…' '정의란…' '생각버리기…' 등 최상위 세 권의 판매량이 1~200위까지 전체 베스트셀러 판매량 중 5분의 1을 차지했다(310만9066권 중 55만2544권·17.8%).

자문단 올 상반기 출판시장의 두드러진 흐름으로 '자기계발서의 몰락'을 꼽았다. 부자가 되는 요령을 알려주는 베스트셀러가 크게 줄었고, '빌딩부자들'(성선화·다산북스) '강남부자들'(고준석·흐름출판)이 그나마 호응을 얻었다. 창업이나 근로가 아니라 부동산으로 부를 축적하는 노하우를 담은 책들이다. 자문단은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노력해도 사다리를 올라갈 수 없다'고 지레 좌절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얘기"라고 했다.

그 틈을 파고든 트렌드가 '불안한 30대'였다.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김혜남·갤리온), '서른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김선경·걷는나무), '서른과 마흔 사이'(오구라 히로시·토네이도) 등 '서른 살'이라는 나이를 직접 거명한 책 3권(6만4352권)이 '빌딩…' 등 부자 되라는 책 7권을 합친 것(6만2225권)보다 많이 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