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를 소비하는 이들은 참 변덕스럽다. 감각이나 감정이란 것에도 역치(감각세포에 흥분을 일으킬 수 있는 최소한의 자극 크기)가 있어 자극이 더해질수록 더 세고 빠른 자극에만 반응하게 된다. 수십 년 전만 해도 흑백 무성영화나 유랑 서커스, 마당극을 보고 웃고 울었던 사람들이 이젠 3D 영화나 컴퓨터 게임, 아이돌 그룹이 아니면 눈길도 주지 않는다.
실뱅 쇼메 감독의 2D 애니메이션 '일루셔니스트'는 사람들이 애정의 눈길을 거둔 것들에 대한 향수와 경의를 표하는 영화다.
영화는 더 이상 '마술'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마법' 같은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을 그린다. 중년의 일루셔니스트(마술사)는 흰 토끼를 데리고 이곳저곳을 떠돌다 작은 선술집에서 만난 순수한 소녀 앨리스와 함께 공연 여행에 나선다. 마술만 있으면 예쁜 옷과 구두가 나온다고 믿는 앨리스의 꿈을 지켜주기 위한 일루셔니스트의 눈물겨운 노력이 시작된다. 그러나 텔레비전, 영화, 록 스타 등 새 유행에 밀려 이제 옛 시절의 유물이 돼버린 일루셔니스트와 그의 동료 복화술사, 피에로 등은 갈 곳이 없다.
연필 선이 모두 보일 정도로 투명한 수채화 같은 그림에다 색상의 명도(明度)도 낮아서 화면이 눈에 확 들어오진 않는다. 대사는 거의 없고 마임에 가까운 몸짓과 표정만으로 의사소통이 이뤄진다. 픽사나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에 익숙한 사람들은 초반에 답답함을 느낄 만하다. 그러나 조금만 인내심을 가지고 몰두하다 보면 옛날 동화책이 숨결과 살결을 가지고 되살아나는 듯한 환상을 보게 된다.
쇼메 감독은 '프랑스의 찰리 채플린'이라고 불리는 배우 자크 타티가 자기 딸에게 보낸 편지에서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주인공 일루셔니스트는 타티의 현신(現身) 같다. 어깨가 구부정하고 키가 커서 바지가 발목 위로 껑충하게 올라온 것이나 레인 코트만 입고 다니는 일루셔니스트의 모습은 타티를 그림으로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과장되지 않은 몸짓과 표정만으로 소소한 기쁨과 애환을 표현하는 것도 닮았다.
일루셔니스트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성장한 앨리스가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자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홀로 길을 떠난다. "어떻게 너를 행복하게 해준 날 버리냐"고 따지지도 화내지도 않는다. 마찬가지로, 영화는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표시하지만 변덕스러운 대중을 원망하지 않는다. 우리가 한때 사랑했지만 조용히 사라져버린 모든 것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상영중. 전체 관람가.
☞ 이것이 포인트
#장면
우연히 들어간 극장에서 자크 타티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영화 속 타티를 보고 어리둥절해 하는 일루셔니스트. 실뱅 쇼메 감독이 타티에게 바치는 경의와 애정이 느껴진다.
#해외평
“당신만을 위한 매직쇼를 만나라!”(더 가디언)
#이런 분들 보세요
3D다, 4D다 해서 나온 요즘 영화의 현란한 화면에 눈이 시리고 머리가 어지러운 분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