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17일 민주당과 원내 수석부대표 간 협의를 갖고 6월 국회 주요 운영방안에 합의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및 민생현안 처리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저축은행 비리 국정조사특위 등 구성안이 골자다. 그러나 북한인권법 처리 문제는 이날 합의문에서 빠졌다. 한나라당은 "북한인권법을 6월에 법사위에 상정한다는 양당 원내대표의 합의 정신은 그대로 살려두되 합의문에는 넣지 않기로 했다"고 했지만 사실상 6월 국회 처리를 포기한 것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북한인권법안은 작년 2월 국회 외교통상통일위를 통과한 뒤 민주당의 반대에 막혀 1년 이상 법사위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법안이 처음 발의된 것이 2005년으로, 6년째 국회에서 잠을 자는 상황이다.
황우여 원내대표는 지난 7일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북한인권법을 이번(6월 국회)에 통과시키지 못하면 국민적 저항과 국제적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고 했고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이날도 "6월 국회에서 북한인권법을 반드시 통과시킬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공언(公言)'이 빈말이 돼버렸다. 한나라당 핵심 관계자는 "민주당이 북한민생인권법과의 병합 심사를 주장하며 북한인권법 처리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6월 국회 처리는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민주당 핵심관계자도 "한나라당은 애초부터 6월 국회 처리에 대한 의지가 강한 것 같지 않았다"고 했다.
한나라당이 추진을 약속해놓고도 슬금슬금 뒷걸음질 쳐온 정책은 이뿐만이 아니다. 한나라당은 이날 민주당과 한미 FTA 비준안 처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여·야·정 협의체 구성에 합의했지만 비준안 처리 일정은 오리무중인 상황이다. FTA 소관 상임위인 외통위의 남경필 위원장 등 지도부는 그동안 "미 의회의 처리 상황을 보고 국회 처리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해왔는데, 미 행정부가 아직까지 의회에 비준안을 제출하지 않자 비준안의 국회 상정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미국만 바라보는 게 여당의 유일한 전략이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정부가 6월 국회 처리를 목표로 추진하는 군(軍) 상부지휘구조 개편 등 국방개혁 작업도 야당은 물론 여당 내 이견으로 국회 국방위원회 문턱도 넘지 못하고 있다. 국회 국방위원들이 개혁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개혁안에 대한 검증 등을 이유로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 지도부가 조율에 나서거나 입장을 정리하려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 보다 못한 이명박 대통령이 오는 23일 국회 국방위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직접 설득할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한나라당은 지난달 황우여 원내대표 체제가 들어선 이후 감세 철회, 반값 등록금 추진 등 그동안 여권이 추진해온 핵심 정책들을 불과 한 달 만에 뒤집어버렸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이 기존 정책 뒤집기에는 기를 쓰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정체성과 직결된 법안과 정책에 대해서는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한나라당 신(新)지도부가 인기 영합주의적 정책 뒤집기에만 골몰한 뿐 정체성을 찾지 못하면서 당이 표류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