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주택을 찾아보기 어려운 동네에 사는 탓인지 시간이 차곡차곡 쌓인 멋진 주름을 가진 단독주택들을 보면 반갑다. 집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체로 느껴지기도 한다.
나도 간혹 꿈을 꾸어본다. 마당에 꽃도 심고 딸아이와 소꿉놀이할 수 있는 그런 집에 사는 꿈을. 뭐 그러다 곧장 깨어난다. 연립주택 전세에 사는 데다 연습실도 없는 놈이 무슨. 집에서 버스정류장 가는 길에 오래된 양옥집 한 채가 있었다. 단정한 모양새로 지날 때마다 기분 좋은 집이었다.
그러던 어느 4월, 그 집 담장 곁에 서 있던 나무에 꽃망울이 맺히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발그레한 꽃들이 터져 나왔다. 짝사랑하는 님에게 속마음 들켜버린 아가씨 얼굴처럼 고운 홍매화였다. 매일 그 집 앞을 지나는 길이 설렜다. 지나가던 아주머니들은 "어! 어!" 하며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 집 담벼락에 붙어 넋을 잃고 홍매화를 감상했다. 그 주변에서 홍매화의 자태는 단연 압권이었다. 새삼 봄의 기운과 꽃의 아름다움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홍매화가 만개한 며칠 후 나는 일본에서 열리는 무용 워크숍에 참가하러 가야 했다. 그리고 약 열흘 뒤 돌아왔다. 꽃들이 아직 남아 있을까 두근거리는 맘으로 그 집 앞을 지나는데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홍매화는커녕 그 예쁘던 집이 헐리고 거기에 연립주택이 세워지고 있었다. 마치 내 집을 누가 훔쳐가 버린 듯 아쉬웠다. 내가 모르는 사정이야 있었겠지만 홍매화를 통해 만났던 봄을 내년에는 만나지 못할 거라 생각하니 서운한 마음 그지없었다. 좀 더 두고 볼 순 없었을까, 그 집도 홍매화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