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해범 동북아연구소장

지난 9~10일 중국 길림성 훈춘(琿春)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 기간에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한국의 남북물류포럼이 주최한 이 행사는 첫날 학술세미나에 이어 둘째 날 훈춘시정부의 투자사업 설명회가 예정돼 있었다. 그런데 양국 학자들이 참석한 첫날 세미나가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도중에 시정부로부터 갑자기 "다음날 투자사업 설명회를 취소한다"는 통보가 왔다. 주최측은 취소 이유를 알고자 했으나, 훈춘시는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았다. 부득이 주최측은 다음날 스케줄을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세미나 참석자들이 현지 인맥을 동원해 취소 배경을 알아본 결과, 그 며칠 전부터 준비된 '나선 경제무역지역' 공동개발 착공식이 9일 북한 나진에서 열렸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북한의 장성택 행정부장과 중국의 천더밍(陳德銘) 상무부장이 참석한 이 행사를 위해 상급기관인 중국 외교부, 당대외연락부, 발전개혁위원회, 길림성 간부들이 대거 출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방 소도시인 훈춘시 입장에서 수십명의 한국인이 참석하는 투자설명회보다는 북·중 간의 국가적 행사가 훨씬 중요했던 것이다.

외국인 투자 유치가 급한 훈춘시가 한국인들을 홀대하면서 북한으로 달려간 사건은 가볍게 보아넘길 일은 아니다. 이는 중국이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잘 보여준다. 중국의 대북정책은 2009년 7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조장(組長)인 외사(外事)영도소조의 한반도 관련회의를 계기로 '북한의 안정'과 이를 위한 적극적인 '대북 포용'으로 선회한 것으로 국내 학자들은 분석한다. 그해 10월 초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방북해 마오쩌둥의 맏아들인 마오안잉(毛岸英)의 묘를 참배한 것도 그 일환으로 본다. 중국은 천안함·연평도 사건에서 북·중 관계가 한·중 관계에 우선한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올 들어 대북 관광상품을 통해 돈이 북한으로 흘러들어 가게 하고 있다. 나진은 이미 중국인들로 북적댄다.

이런 흐름 위에서 중국은 황금평과 나선지역 착공식을 통해 북한으로 들어가는 양대 통로를 확보했다. 하나는 압록강 하류의 단둥과 신의주를 잇는 서북축이고, 다른 하나는 두만강 하류 훈춘과 나선~청진으로 연결되는 동북축이다. 이 양대 축을 통해 중국의 돈과 물자·사람이 북한으로 밀려 들어가고, 각종 대형 건설프로젝트도 탄력을 받게 됐다. 2013년 말쯤 신압록강대교가 완공되면 중국의 자가용과 관광버스, 군용트럭도 쉽게 북한을 드나들 수 있다. 통일교육원 권영경 교수는 "그동안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경제와 안보를 해결하려던 북한이 경제난과 3대 세습 등으로 다급해지자 중국 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중 경협은 북한의 개혁개방을 촉진한다는 점에서 한국도 반대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세계로부터 고립된 북한에서 중국 기업들이 거의 독점적으로 지하자원을 싹쓸이하고 자연환경을 파괴한다면 그 후유증은 통일 후까지 미친다. 또 이런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면 북한 경제의 중국 종속은 심화되고 한국의 개입 여지는 줄어든다. 그래서 접경지역의 한국 기업인들은 "우리 정부의 대응전략은 무엇이냐"고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