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 두고 온 가족을 데려오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우선이다." "북한 사람은 안 만난다. 어려울 때는 북한에 있을 때를 생각한다." "남한 사람들도 북한 사람들 일만 시키려 하지 말고 보듬어주고 이해해줘야 한다."
탈북자 2만 시대. 어렵사리 자유 남한에서 새 삶을 시작한 이들의 주된 관심사는 여전히 북에 두고 온 가족 그리고 돈이었다. 북한의 집단주의와 빈곤의 수렁에서 탈출한 이들이 남한 현실에 직면해 체득한 삶의 신조는 자유민주주의가 권장하는 '건전한 개인주의'보다는 '나와 가족이 살기 위한 극단적 이기주의'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자본주의를 급격히 체득하는 과정에서 왜곡된 '배금주의'의 포로가 되는 경향도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14일 한국중앙학연구원 현대한국연구소가 '평화통일의 전망과 대비 방안 제시'를 주제로 연 학술대회는 국내 탈북자 현황에 대한 종합 진단의 시간이었다. 탈북자들의 남한 정착 과정은 통일 이후 남북 통합의 축소판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이날 발표 중에는 최근 탈북자의 70%에 육박하는 여성 탈북자들의 면접 조사 결과를 통해 이들의 고충과 생각이 생생하게 전달됐다.
◆생존욕이 낳은 배금주의
"식당이랑 여기저기 아르바이트 일을 하니까 밤늦게, 새벽에 일 끝나면 낮에 자고 밤에는 일 다니고 그러니 늘 피곤하죠. (…) 북에 여동생 가족이 있어서 데리고 나오려면 돈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우선이고. 어머니도 같이 모셔 와서 계신데, 70이 넘은 노인네가 어디를 다니겠어요. 집 앞에 복지관이 있어도 안 가세요. 동네 한 바퀴 돌고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안 하고 지내는 거죠."(한모씨·45·정착 2년9개월)
"일하는 사람들도 목표는 돈이라는 생각만 있어요. 앞으로 뭘 잘할 것인가, 앞의 길을 보고 나가는 신중한 생각이 없어요. 아는 거 없고 들어본 거 없고 길에 대해서 모르니까. 지금 돈이 안 돼도 앞으로 발전해서 나가겠다 하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여성들에게 희망이 있어야 해요."(정모씨·38·정착 3년)
이날 발표자들은 탈북자들이 남한 사람보다 더한 배금주의를 보이는 경향에 대해 큰 우려를 나타냈다. 이런 경향은 역설적이게도 "탈북 이전 북한의 실패한 계획경제를 체험하면서부터 싹텄다"고 지적됐다. 1990년대 들어 북한은 극심한 경제난을 겪으면서 '겉으로만 사회주의지 뱃속은 모두 자본주의'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돈만 있으면 다 된다는 사고방식이 퍼졌다. 이런 상황에서 탈북자들은 자력구제의 방편으로 탈출을 택했고, 생존을 위한 이기주의는 의지할 데 없는 남한에 와서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것. 조요셉 치안정책연구소 연구부장은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되고, 이런 금전관이 새로운 사회에서의 인간관계 형성에 장애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탈북문제의 핵으로 떠오른 여성
1989년까지만 해도 전체 탈북자 중 여성은 7%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2년부터 남성을 추월, 현재 2만539명 중 69%에 이른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북한의 감시가 남성보다는 덜하다. 북·중 접경지대의 인신매매·매매혼 전문 브로커들도 여성 탈북을 부추긴다. 여성이 가족 생계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경향이 더 크다는 점도 한몫한다. '코리안 드림'의 선발조로 여성이 나서고 있는 셈.
연령은 20~29세, 30~39세가 60% 이상을 차지한다. 경기도 여성새로일하기지원본부의 한미라 팀장은 "학업·직업·결혼·출산 등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들을 겪는 시기"라면서 "탈북 여성이 자기 삶에 대한 계획과 목표를 이뤄갈 수 있도록 다양한 역할 모델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