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들을 먹여 살리는 건? 1000만 관객일까 아니면 거대 자본을 지닌 투자 배급사일까. 모두 틀렸다. 영화 현장의 '밥차'다. 1t 트럭을 포장마차처럼 개조한 밥차는 가스레인지는 물론 식기와 주방용품부터 접이식 식탁과 의자까지 다 싣고 다닌다. 톱스타와 명감독부터 연출부의 막내 스태프의 세 끼 식사와 야식까지 책임지는 게 이 밥차다.
밥차의 시초는 포장마차다. 밥차가 생기기 전에는 김밥과 라면을 사 먹거나 촬영 현장 근처 식당에서 배달시켜 먹었다. 영화 제작자 씨네2000의 이춘연 대표는 "1999년 양수리 근처 산속에서 영화 '신장개업' 촬영을 했는데 야식을 조달하기 위해 양수리 시내에 있는 포장마차를 끌어왔다"며 "포장마차 주인이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그 다음해 영화 '학교전설'의 촬영장서부터 밥차를 운영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현재 국내에 있는 밥차업체는 10개 안팎. 밥차의 한 끼는 6000원으로 밥과 국 그리고 고기가 들어간 요리를 포함해 너덧 가지의 반찬이 함께 나온다.
밥차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밥차가 살아남기 위해서 중요한 것으로 첫 번째가 맛, 두 번째가 시간, 세 번째가 양이라고 한다. 한 밥차 운영주는 "여주인공인 배우가 '맛이 별로다'고 한두 번 얘기하면 밥차의 운명은 끝"이라고 했다. 식사시간에 한 번 늦으면 경고를 받고, 두 번 늦으면 현장에서 바로 차를 빼야 한다. 식사는 넉넉히 만들어놔서 남는 경우 촬영 현장 인근 이웃들에게 나눠 주기도 한다.
밥차 운영주들은 "하루만 일해보면 감독과 배우는 물론 스태프들의 식성까지 다 꿴다"고 했다. '육류를 좋아하지 않는 송강호씨가 있는 촬영 현장에선 생선이나 젓갈류를 내놓고, 혈압이 높은 강제규 감독을 위해선 저염식을 따로 준비하는' 식이다. 다이어트를 하는 여자 배우들을 위해 샐러드와 죽을 따로 준비해주는 것도 기본이다. 지난해부터 밥차에서 일해온 강욱씨는 "한 남자 배우는 웃옷을 벗는 장면이 잠깐 나오는데도 촬영 내내 몸을 만들기 위해서 샐러드만 먹었다"며 "밥을 안 먹는 건 까다로운 게 아니라 프로다운 것이다"고 했다.
그래도 밥차 운영자들이 가장 예뻐하는 사람은 밥을 잘 먹는 배우다. 2004년부터 밥차 '사계절'을 운영한 김태완씨는 "외국인이라 입맛이 안 맞을까 봐 걱정했는데 매끼를 밥차에서 먹은 데다가 밥을 남기지도 않았던 일본 톱스타 오다기리 조가 너무 좋았다"며 "밥 먹고 나면 인사까지 꼬박꼬박 하는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고 했다. 아무 데나 주저앉아 스태프들과 밥을 먹는 여배우 정려원씨도 밥차에서 인기가 높다고 한다. "여배우가 맞나 싶을 정도로 털털하고 어떻게 저렇게 마를까 싶을 정도로 이것저것 잘 먹는다"는 후문이다. 김태완씨는 "영화 '괴물' 현장에서 송강호씨가 라면을 끓여달라고 했는데 당시 함께 일했던 아내가 너무 떨린 나머지 수프를 안 넣고 맹물에 면만 끓여 내줬다"며 "아찔한 순간이었는데 송강호씨가 껄껄 웃어넘겼다"고 했다.
밥차가 가장 힘들 때는 밥 시간이 제대로 안 지켜질 때다. 100여편의 영화에 밥차를 공급한 한 업체는 "감독이 밥 먹을 시간을 주지 않아 스태프들이 몰래 밥차에 와서 5분 만에 밥을 먹고 가는 현장도 있다"며 "그런 촬영 현장에선 욕설이 들리는 등 분위기가 살벌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