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친구들이랑 양말이랑 신발도 사고 음악도 듣고 음료수도 사먹고 오락도 해요. 작정하고 쇼핑을 한다기보단 그냥 놀면서 옷을 하나씩 사 입는 거죠." 서울 명동의 S의류매장. 대학생 김유승(22)씨는 요즘 학교 수업을 마치고 나면 거의 매일 이곳으로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와 출근도장을 찍다시피 한다고 했다. 옷 가게 안에 커다란 오락기계, 사탕가게, 동전을 넣어 색색의 속옷이나 우산을 살 수 있는 자판기, 최신 음반을 무료로 들을 수 있는 오디오 기계까지 있어 놀기엔 제격이기 때문이다.

최근 김씨처럼 '노는 즐거움'에 이끌려 옷을 쇼핑하는 20~30대 남성들이 늘고 있다. 이들을 겨냥한 마케팅을 두고 업계에선 '펀핑(Funpping)' 전략이라고 부른다. 쇼핑(shopping)과 재미(fun)라는 단어를 합성한 신조어. 여자들과 달리 쇼핑에 금세 싫증을 느끼는 남자들을 유인하기 위해 매장 곳곳에 놀이요소를 배치하는 곳이 늘고 있다.

서울 명동 한 의류 매장에서 20대 남성들이 모여 옷을 고르고 있다. 가게 안엔 자전거·오락기계·자판기까지 있어 놀면서 쇼핑할 수 있다.

서울 강남 신사동의 한 의류 아웃렛. 가게 한쪽엔 미니 당구대가 있다. 여자친구가 이옷 저옷을 고르는 동안 심심한 남자들에게 당구를 치면서 시간을 때우라는 가게 주인의 배려다. 배준오(27)씨는 "처음엔 여자친구 손에 끌려와 시간을 때우기 위해 당구나 치면서 보냈는데, 요즘엔 오히려 내가 더 열심히 쇼핑하고 있다"고 했다. 연두색 치노바지, 알록달록한 색색의 양말, 레고를 응용해 만든 재치 있는 행커치프 등이 배씨가 최근 이 가게에서 '홀리듯' 산 물건. "놀러 왔다가 뒤늦게 쇼핑 세계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요즘 옷 좀 입는다는 20~30대 남자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끄는 명동 A매장도 마찬가지다. 이곳 매장 안엔 카페, 음반청취시설, 문구점, 휴게시설이 한꺼번에 몰려 있다. 매장측은 "손님 중 60%가 남자"라며 "처음 가게 문을 열 때만 해도 여자 대 남자 비율이 반반이었지만, 이젠 남자 손님이 더 많다"고 했다.

때론 매장 직원의 독특하고 재치 있는 패션 센스가 남자들의 '펀핑'을 자극하는 또 다른 요인이 되기도 한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는 U매장은 직원들의 옷차림에 크게 신경을 쓰는 곳. 머리부터 발끝까지 개성 있게 입으라고 직원들에게 주문한다. 이 때문에 핑크색 셔츠에 남보라색 재킷, 색실로 바느질한 청바지에 물방울무늬 양말과 스웨이드 구두 차림의 패셔니스타 뺨치는 직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매장 관계자는 "직원들이 옷을 근사하고 유쾌하게 입고 있으면 이에 자극을 받아 옷을 저절로 사는 남자고객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시도한 마케팅이다. 재미있게 손님을 유인하는 또 다른 방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