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69)이 지난 3일 대통령궁을 향한 반정부군의 포격으로 부상을 입은 뒤 4일 사우디아라비아로 가 머무르고 있다고 사우디측이 밝혔다. 살레 대통령은 심장 7.6㎝ 아래에 포탄 파편을 맞고 가슴과 얼굴에 2도 화상을 입었으며 뒤통수에도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함께 있던 경호원 7명이 사망했고 총리와 부총리, 의회 상·하원 의장도 부상을 입어 단체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로 갔고, 대통령 유고에 따라 부통령의 직무대행 체제로 돌입하는 등 정권 공백 상태다.

치료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내전 와중에 가족과 측근들을 이끌고 해외로 피신한 것은 망명으로 해석되며, 예멘이 이집트·튀니지에 이어 독재자 축출 혁명에 성공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살레 독재 끝났다"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가족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났다는 소식을 접한 예멘군 병사들이 5일 수도 사나에서 반정부 시위대와 한데 섞여 환호하고 있다. 수만 명의 시민들은 그동안 반정부 시위의 중심지가 됐던 수도 사나의 변화광장에 모여 춤을 추며 33년간 집권해온 살레 대통령의 출국을 반겼다. 지난 3일 로켓 공격에 다친 살레는 이날 갑자기 사우디아라비아로 출국했다.

예멘 민주화 혁명 성공할까

예멘에서 민주화 시위가 시작된 지 4개월 만에 독재자가 해외로 피신하자 전세가 급반전되고 있다. 예멘의 야권과 대학생·지식인 시위대 등은 부정부패와 경제 실패로 점철된 살레의 33년 독재가 끝났다며 들떠 있다고 AFP 통신 등이 전했다. 외신들은 이날 수도 사나가 오랜만에 포격 소음 없는 평온한 주말을 맞았으며 대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독재정권 붕괴' '예멘이 새로 태어난다'는 구호를 외치며 자축했다고 전했다. 영·미 언론들도 앞으로 살레가 예멘으로 돌아와 권좌에 복귀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살레가 그동안 퇴진 약속을 수차례 번복하는 등 예측이 불가능한 인물인데다, 정부와 군을 장악한 그의 친족을 중심으로 한 지지세력도 여전히 막강해 혁명의 성공을 점치기는 아직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멘의 최대 시위조직인 '변화를 이끄는 젊은이 혁명 협력회의'측은 4일 미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설마 이것이 끝이겠느냐. 더 큰 폭력이 우리를 덮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최근 복잡해진 예멘의 내전 양상을 감안하면, 살레 대통령이 축출되더라도 '민주화를 향한 시민 세력의 승리'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미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는 분석했다. 예멘 수도를 포함한 북부에선 공권력의 이완기를 틈타 주요 부족 간 주도권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고, 남부에선 아라비아반도 알카에다(AQAP)로 추정되는 무장세력이 진지바르주를 장악하는 등 무정부 상태가 확산되고 있다.

막후에서 뛴 사우디와 미국

살레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해 막후에서 중동의 수퍼파워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도 긴밀히 움직여왔다고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튀니지와 이집트의 경우 친미(親美) 독재자들이 갑작스럽게 축출돼 관련국들이 손 쓸 틈이 없었지만, 내전이 길어진 예멘에 대해선 사우디와 미국이 오랜 시간 새 판을 짜기 위한 '연착륙'을 준비해왔다는 것이다.

걸프 왕정 6개국 모임인 걸프협력회의(GCC) 의장국인 사우디는 지난 3월 18일을 고비로 살레 정권의 시위대 무력진압이 도를 넘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는 지난 4월부터 살레측과 반군의 무한 충돌을 막겠다며 중재에 나섰고, 이번에도 부상당한 살레에게 "사우디로 오라"며 끌어낸 뒤 하야를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對)테러전 핵심 동맹으로서 살레 정권을 지원해왔던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예멘의 정부 기능이 원활치 않아 공조가 어려워진 데다, 전면적 시위 국면에서 살레 정권을 계속 비호하는 것은 테러세력의 활동영역만 넓혀줄 수 있다고 보고 그의 퇴진 쪽으로 돌아섰다. 미 국방부 대변인은 4일 "얼마 전부터 살레 (축출) 이후를 대비해왔다. 대테러전 시스템이 살레 한 사람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이 살레의 평화적 퇴진에 기여할 경우 민주화 지지라는 명분과 대테러전 동맹의 연속성이란 실리를 모두 잡을 수 있다는 판단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