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게 잠겨 있던 맞춤형 나무 상자가 열리자 붉고 노란 해질녘 하늘을 담은 가로 122㎝, 세로 74.3㎝ 크기의 캔버스가 눈앞에 드러났다. 나지막한 지평선 아래 철길이 끝없이 펼쳐졌다. 노을진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잿빛 전봇대와 관제탑이 달콤한 쓸쓸함을 자아냈다. 현대인의 고독과 불안감을 즐겨 그린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Hopper·1882~1967)의 유화 '해질녘의 철로'(1929)다. 이 작품은 11일부터 9월 25일까지 조선일보사국립현대미술관 공동주최로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는 미국 뉴욕 휘트니미술관 소장품전 '이것이 미국 미술이다'에 전시된다.

'이것이 미국 미술이다'전 작품 개봉이 있었던 5일 오전 서울 덕수궁미술관 3층 전시실. 유물 운송팀이 상자에서 호퍼의 그림을 완전히 끄집어내자 작품 감상에 넋을 잃고 있었던 관계자들도 이내 정신을 차리고 바삐 움직였다. 애비게일 후버(Hoover) 휘트니 미술관 레지스트라(작품의 관리 및 출납을 담당하는 직원)와 차병갑 국립현대미술관 보존과학 담당관 등이 손전등과 솔을 들고 꼼꼼히 그림의 상태를 확인했다. 뉴욕 JFK공항에서 인천공항까지 14시간의 비행 동안 혹여 작품이 손상되지 않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검토가 끝나자 후버씨가 작품 관리 카드에 'No apparent change(눈에 띄는 변화 없음)'라고 적었다. 후버씨는 "미술 작품은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기 때문에 손상을 막기 위해 인천공항에 도착한 후 24시간 이상의 현지 적응기간을 거쳐 상자를 개봉했다"고 말했다.

5일 오전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 미국 휘트니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들이‘이것이 미국미술이다’전에 나올 에드워드 호퍼의‘해질녘의 철로’포장을 풀고 작품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 선보일 작품 87점은 6월 2일과 3일 두 차례에 나뉘어서 인천공항으로 들어왔다. 유물을 한꺼번에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은 비행기 사고 등의 불상사가 일어날 경우 작품을 몽땅 잃게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 밖에 존 슬론의 '그리니치 빌리지의 뒷골목'(1914), 조지아 오키프의 '추상'(1926) 등 50여점이 5일 개봉됐으며 나머지 작품들은 6일 개봉된다.

'이것이 미국 미술이다'전에는 미국의 대표적 현대미술관인 휘트니미술관이 소장한 작품 중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 20세기 현대미술의 중심축을 미국으로 옮겨온 대표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