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카스(드링크), 케토톱(파스), 훼스탈(소화제)…. 약국에서 이런 약을 살 때 약사들에게서 부작용 같은 주의사항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봐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스스로 알아서 먹고 마시고 붙이는 이런 약들도 사려면 꼭 약국에 가야 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수퍼에서 살 수 있는 약은 '치약'뿐이란 냉소까지 나온다.
박카스는 카페인이 있어 '약'이라지만, 카페인이 든 콜라나 홍차는 수퍼에서 살 수 있다. 스프레이로 뿌리는 파스는 '의약외품'으로 수퍼서 살 수 있지만, 붙이는 파스는 '약'이어서 약국에서만 살 수 있다. 하지만 선진국들은 이처럼 안전성이 인정된 약은 '비처방전 약' '자유판매 약'으로 지정해 수퍼나 편의점에서 팔고 있다.
지난 3일 보건복지부는 그동안 논의되어 오던 감기약·해열제 등 일반의약품의 수퍼 판매에 찬물을 끼얹었다. 복지부는 "약은 약사만이 다루도록 약사법에 규정되어 있다"며 "약을 재분류해 수퍼 판매 방안을 찾아보겠다"며 논의를 원점으로 돌려버렸다. 주변에 약국은 많지만 밤이나 공휴일엔 복통이나 설사를 해도 문을 연 약국을 찾기 힘들다. 우리 국민은 밤에는 아플 권리조차 없다는 것을 복지부 관료들은 과연 모르는 것일까.
우리나라가 서구 선진국들과 달리 이렇게 된 것은 우리와 비슷한 약사법 구조를 가진 일본의 영향을 받아서다. 일본은 1993년에야 일반의약품의 소매점 판매 허용 논의를 시작했다. 그러자 우리도 1997년 정부의 의료개혁위원회에서 의약품을 수퍼에서 팔자는 논의를 시작했지만 당시 보건복지부는 약의 안전성을 들어 반대했다. 이후 일본은 급속도로 바뀌었다. 일본 정부는 1998년 땀띠·짓무름제, 티눈약, 비타민제 등 15개, 2004년 소화제, 정장약, 위장약, 동상약 등 371개를 푼 뒤 안전성을 확인하고 2009년 전체 일반 약의 95%를 수퍼에서 팔도록 했다. 일본 고이즈미 내각이 후생노동성과 약사협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국민의 편익이 앞선다는 판단에서였다.
그 사이 우리 정부는 무엇을 했을까. 2007년 참여정부는 땀띠약과 칼라민로션 같은 피부연화제 등의 수퍼 판매를 허용했다. 그나마 6개였고, "앞으로 일본 수준에 맞추겠다"고 밝혔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일본처럼 소화제·정장제의 수퍼 판매를 제시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국민의 불편을 덜기 위해 당번약국 시행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국회에 상정됐으니 수퍼 판매와 어느 쪽이 더 좋은 방안인지 살펴보겠다"며 논의를 유야무야시켰다. 하지만 그 당번약국 의무화가 흐지부지됐는데도 복지부는 이번에도 약사회가 당번약국을 대거 운영하겠다는 말에 또다시 물러섰다.
그러나 약의 수퍼 판매는 우리도 결국에는 풀 수 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복지부는 약사들의 반발에 부딪히자 "내년 총선만 넘기고 보자"며 내놓은 방안일지 모르지만 복지부가 '약사 권익 옹호부'인지, '국민 편의 옹호부'인지 국민이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