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전(한국시각) 잉글랜드 서리의 웬트워스골프장 18번홀(파5). 세계 랭킹 1위 리 웨스트우드(잉글랜드)와 2위 루크 도널드(잉글랜드)가 유럽프로골프투어 BMW PGA챔피언십 우승을 놓고 연장 승부를 벌였다. 이날 입장한 2만5236명의 갤러리 대부분이 18번홀 주변을 에워쌀 정도로 뜨거운 열기였다.

세계 1·2위가 골프 사상 처음으로 연장전까지 벌이면서 대회 우승과 세계 1위 자리를 동시에 다투는 이 명승부에서 뜻밖에도 한 여성 갤러리가 잠시 주인공이 됐다.

웨스트우드가 티샷한 공이 오른쪽으로 크게 밀렸다. 공이 날아간 쪽 나무 숲 근처 로프에 몰려 있던 갤러리 대부분이 공을 찾느라 술렁댔다. 공 위치가 확인되자 다른 갤러리는 모두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한 중년 여인이 공 바로 옆에 있는 백팩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중계 카메라와 기자들이 몰려들자 이 여인은 멋쩍게 웃으면서도 가방에 닿은 오른발은 움직이지 않았다. 혹시 발을 움직이면 가방이 넘어지면서 공이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30일 유럽 프로골프투어 BMW PGA챔피언십 연장전에서 리 웨스트우드의 티샷이 갤러리 사이로 떨어졌다. 공 옆에 있던 여성 갤러리는 자신이 움직이면 공의 위치에 영향을 줄까 봐 웨스트우드가 올 때까지 4~5분을 꼼짝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

웨스트우드가 티잉 그라운드에서 걸어오는 동안 4~5분 남짓 걸렸을까. 웨스트우드가 공 옆에 티를 꽂고 나서야 이 여인은 발을 빼고 가방을 치웠다. 웨스트우드는 이 여인에게 정중하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넨 뒤 플레이를 계속했다.

'갤러리의 발'이 국내에서도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지난달 경기도 이천에서 열린 유럽투어 발렌타인챔피언십 때였다. 3라운드 당시 선두를 달리고 있던 브랫 램퍼드(호주)가 티샷한 공이 내리막 카트 도로를 타고 굴러오자 한 갤러리가 발로 막았다. 멈췄던 공이 다시 구르면서 굴러가는 방향이 바뀌어 램퍼드는 엄청난 거리를 손해 봤다. 이 장면이 전 세계로 중계되면서 한국의 골프문화는 웃음거리가 됐다.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카메라 셔터 소리, 경기 중 티잉 그라운드에 들어가 사인을 요청하고, 공을 달라고 골퍼의 몸을 잡아끄는 갤러리, 경기 진행에 오히려 방해가 되는 미숙한 경기 진행요원…. 골프 실력은 메이저 대회를 우승할 정도로 발전했지만 갤러리 문화는 바닥 수준이라는 것을 드러냈다.

지난달 경기도 이천에서 열린 유럽투어 발렌타인챔피언십 때 카트 도로를 따라 굴러가던 공을 한 갤러리가 발로 막고 있다. 이 장면은 전 세계에 중계됐다.

지난해까지 신지애의 캐디였던 딘 허든(호주)에게 한국의 갤러리 문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본 적이 있다. 신지애는 국내 대회에 올 때마다 늘 "저를 아껴주시는 팬들에게 감사하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하지만 허든은 "외국에서도 갤러리가 실수로 경기를 방해할 때가 있다. 하지만 협조를 요청하면 금세 달라진다. 그런데 한국 갤러리 가운데는 아무리 협조를 요청해도 아랑곳하지 않는 무례한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유럽 PGA챔피언십대회에는 나흘간 10만명 가까운 인파가 몰렸다. 하지만 선수들이 갤러리 소음 때문에 어드레스를 푸는 장면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골퍼의 플레이를 빛내주는 엄청난 열기가 있었을 뿐 소란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