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의 반체제 인사들을 변호해 국제적 명성을 얻은 로버트 암스테르담(Amsterdam·55) 변호사가 처음 방한했다. 방한 목적은 한국이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이하 우즈베크)에 대한 투자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함이다. 변호사로서 그의 주된 분야는 독재국가의 반체제 혹은 반정부 인사 변론과 함께 국제적 기업들이 독재국가들로부터 당하는 피해를 방어하는 것.
암스테르담 변호사는 런던·토론토·워싱턴에 사무소를 둔 국제 로펌 '암스테르담 & 페로프(Amsterdam & Peroff LLP)'의 대표로 지난 30년 동안 이머징마켓(신흥시장)을 중심으로 활약해왔다. 특히 복수(複數)재판 관할권 소송, 각종 규제와 세금 관련 소송 중재와 민주화 인사 옹호 캠페인 등을 통해 세계적인 변호사가 됐다. 러시아 최대 갑부였다가 하루아침에 정치 사건의 피해자로 전락한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 태국의 탁신 전 총리의 변호인으로도 유명하다.
암스테르담은 현재 우즈베크 금광채굴사업에 투자한 영국 기업 옥서스의 소송을 맡고 있다. 옥서스는 우즈베크 정부와 AGF(Amantayau Goldfields A.O.)라는 합작사를 설립한 뒤 2003년 연간 19만온스의 금을 본격 생산했다. 하지만 우즈베크 정부는 2005년 2월 안디잔 유혈 폭동 이후 서방과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자국 업체에 채굴권을 부여했고, 옥서스에는 면세 약속을 어기고 2억2400만달러의 세금을 부과했다. 암스테르담은 "독재국가의 전형적인 외국 투자사에 대한 압력 사례"라며 "우즈베크에 다양한 투자를 하는 한국도 이와 유사한 경우를 당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우즈베크와 한국 기업 간 합작사 '갑을방적 우즈베크'도 우즈베크 섬유 생산 분야의 선두 기업이었지만, 2005년 우즈베크 당국이 갑을방적의 부채 급증을 이유로 경영권을 빼앗은 사실을 예로 들었다. 또 현재 한인 소유 타슈켄트 골프장에 대해서도 탈세 혐의가 진행 중인 사실도 언급했다. 이처럼 독재정권은 다양한 방법으로 외국인 투자를 유치한 뒤 적당한 시기가 되면 이를 강제로 회수하는 수법을 쓴다는 것이다.
그런데 영국 회사를 변호하는 그가 왜 급히 한국을 찾은 것일까? "한국 같은 우즈베크에 대한 대규모 투자국과의 공조가 우선돼야 이번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2010년 대(對)우즈베크 투자 순위가 중국에 이어 2위다. 가스공사, 석유공사 등 정부 투자기관을 비롯해 150여개 기업이 5억3725만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암스테르담은 "북한을 제외하면 전 세계적으로 민주화가 가장 뒤떨어지는 우즈베크 정부와 한국이 가장 가깝게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암스테르담은 독재국가 통치자들에게는 천적(天敵)으로 통한다. 2003년 러시아의 호도르코프스키 사건, 2008년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권에 의해 정치범으로 구속된 엘리지오 세데뇨 사건, 나이지리아 야당 지도자 나시르 엘-루파이 사건, 2010년부터는 태국 탁신 전 총리의 요청으로 '레드셔츠' 민주화운동 변호를 담당하면서 이들 국가의 정권과 불편한 관계에 있다. 그는 "태국 민주화 시위 당시에는 정부의 유혈 진압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최후의 순간까지 현장에 머물렀다"며 "탁신은 현 정부로부터 테러 지원 혐의로 기소된 상태"라고 말했다.
독재국가와 중국·러시아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여러 나라에서 신변의 위협을 받고 있다. 그와 접촉한 인물들도 위협에 노출되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미행은 기본이고 살해 위협도 수시로 받는다"며 "내가 접촉했던 러시아 유명 언론인 안나 폴리코프스카야 등 두 명의 기자도 이미 살해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 나라에서는 독재에 저항하면 테러리스트로 분류하고 부정부패 세력으로 낙인 찍는 것이 마치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고 말한다.
미국 출신인 암스테르담은 캐나다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난 학교 부적응자였다." 그는 "청소년 시절부터 마르크스·레닌주의·모택동 사상에 심취했다"며 "13세 때부터 베트남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냉전과 러시아, 중국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이유로 16세 때 고교를 중퇴하고 무작정 아프리카로 떠났다. 가난과 부패에 찌든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를 보면서 변호사가 될 결심을 했다. 캐나다 퀸즈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1978년 변호사가 됐다. 미국과 캐나다 이중국적자인 암스테르담은 "뉴욕서 태어났지만, 사회주의와 독재국가에 대한 지식은 누구와 토론해도 이길 자신이 있다"고 자부했다.
암스테르담은 자원민족주의 체크리스트와 이들 국가의 투자 유의 사항을 모아 블로그 (http ://www.robertamsterdam.com/)에 올리고 있다. 이와 같은 활동으로 그는 2005년 영국 출판물 더 로여(The Lawyer)의 'Hot 100', 타임스 오브 런던(Times of London)에 의해 '금주의 변호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세계적인 명성의 변호사인 그는 정작 "유명해지기 위해 이런 사건을 수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법무법인이 기피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태국의 레드셔츠 지도자를 만나기 위해 25일 홍콩으로 급히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