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가 '민주화 운동과 민주주의: 좌익 운동을 중심으로'란 글을 통해 학생과 교수로 참여해 체험한 1960~70년대 서울대 상대 좌익운동에 대해 증언한 내용은 충격적이다.

안 교수는 대학원에 입학한 62년 빨치산 출신으로 인혁당 가담자인 박현채씨의 지도아래 사회주의자가 됐다고 고백한 뒤 64년 1차 인민혁명당 사건, 68년 통일혁명당 사건, 74년 2차 인혁당사건, 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사건, 79년 김정강 그룹 사건은 "당시 정보·수사기관이 조사해 발표한 대부분의 내용들이 기본적으로는 대개 사실이었다"고 말했다. 서울대 재학시절 인혁당에 가입했던 박범진 전 국회의원도 사건 46년 만인 지난해 "인혁당 사건은 조작이 아니다"면서 "입당할 때 문서로 된 당의 강령과 규약을 봤고 북한산에 올라가서 오른손을 들고 입당선서를 했는데 서울대 재학생은 5명이었다"고 고백했었다.

안 교수는 인혁당은 4·19 이후 첫 자생적 공산주의 정당이었고, 통혁당은 주모자인 김종태가 월북해 북한 지령·자금을 받고 결성된 공산혁명 조직이었다고 말했다. 서울 상대에서는 통혁당의 하부운동이 활발했는데 신영복(성공회대 석좌교수)과 박성준(성공회대 교수) 두 사람이 리더였고 신영복은 김종태가 포섭한 통혁당의 2인자 김질락의 지도를 받았다고 했다. 이 사건으로 김종태와 김질락은 사형됐고 신영복은 무기징역, 박성준은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안 교수는 인혁당과 통혁당 관련자 중심으로 구성된 남민전은 한국 사회를 미제(美帝) 신식민지로 인식하고 무력투쟁으로 해방시켜야 할 대상으로 봤다고 했다.

냉전 시대 지식인들 중 좌익사상에 빠져든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공산체제의 진실을 보게 되면 자신의 사상적 과오를 솔직하게 고백해 후학(後學)들이 자신들과 같은 환상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지식인의 양심이다. 그래서 사상적 전환에는 늘 공개적인 선언이 필요하다. 앙드레 지드를 비롯해 한때 공산주의를 신봉했던 서방 지식인들이 스탈린 시절 소련의 실상을 보고 나서 소련을 비판하는 글을 줄줄이 발표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통혁당 사건으로 13년간 복역한 박성준 교수는 81년 출소한 이래, 20년간 복역한 신영복 교수는 88년 출소한 이후 줄곧 대학 강단에서 후학을 가르쳐왔다. 특히 신 교수는 50만권이 팔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비롯해 수많은 저서를 냈다.

그러나 안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통혁당 2인자로부터 지도를 받았다는 신 교수는 그 많은 저서 어디에서도 통혁당에서 자신이 한 역할에 대해 솔직하게 밝히지 않았다. 그래서 사건 당시 신 교수의 생각은 무엇이었는지, 지금도 그 시절의 그 생각 그대로인지, 아니면 바뀌었는지, 바뀌었다면 무슨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는 당시 권력으로부터 탄압을 받은 피해자인 듯 분위기를 풍길 뿐 당시의 과오에 대해 고백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신 교수는 자신이 젊은 층에 강한 감화력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만큼 더 지식인으로서의 기본 양식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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