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와 함께 20세기를 양분했던 공산주의는 1917년 소비에트 혁명 이전까지는 하나의 이론 또는 이상에 불과했다. 마르크스는 1848년 '공산당 선언'에서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고 외치는 데 그쳤다. 그러나 레닌은 1917년 '4월 테제'를 발표하면서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구호를 행동에 옮겼고 그 해 10월 혁명은 성공했다.

▶1922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레닌은 죽음을 예감하고 '비밀 유언'을 남겼다. 그는 죽은 뒤 권력을 다툴 경쟁자로 스탈린과 트로츠키를 꼽았다. 스탈린에 대해선 "권력을 제대로 사용할 능력이 없다"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레닌은 가족에게 자기가 죽은 뒤에 유언을 공개하라고 했지만 스탈린은 미리 입수했다. 그래서 1924년 레닌이 죽은 뒤 재빠르게 권력을 거머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마르크스가 유대인이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지만 레닌의 혈통은 최근까지 논란거리였다. 소비에트 혁명 초기 핵심세력의 85%가 유대계였고, 유대계 자본이 혁명의 뒷돈을 댔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소비에트의 아버지' 레닌마저 유대계였다는 것은 반(反)유대 정서가 강한 러시아에선 인정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레닌도 그 사실을 숨겼다. 1932년 레닌 가족이 레닌의 유대 혈통을 인정한 편지가 최근 공개됐다고 한다. 가족들은 스탈린에게 보낸 편지에서 "레닌의 외할아버지가 유대인이었고 레닌도 유대인을 대단하게 생각했다"며 반(反)유대 정책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레닌은 사실상 스탈린을 숙청하라고 유언한 셈이었다. 권력을 잡은 스탈린은 레닌을 깎아내리지 않았다. 시신을 미라로 만들어 우상화를 시작했다. 그러나 레닌 우상화는 스탈린 자신을 우상화하려는 준비 작업이었을 뿐이다. 스탈린은 1940년 멕시코에 자객을 보내 망명 중이던 숙적 트로츠키를 암살했다. 그 트로츠키도 유대인이었다.

▶엊그제 유대인 로비단체인 미국·이스라엘 공공문제위원회(AIPAC) 연례 총회에 오바마 대통령과 존 베이너 하원의장을 비롯한 정관계 실력자들이 무더기로 참석했다. 미국 내 유대인 파워가 새삼 증명된 자리였다. 이런 미국과 70년 넘게 체제경쟁을 벌였던 소련도 사실은 유대인 마르크스가 설계하고 유대계 레닌과 트로츠키가 건설한 나라였다. 유대인이 20세기를 지배했다는 말엔 과장이 섞였지만,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닌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