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9시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비자림 숲길 들머리에 들어서니 초록색 나뭇잎이 하늘을 가리며 숲 터널을 이뤘다. 바닥에 깔린 것은 작은 알갱이 크기의 붉은색 화산석인 스코리아. 제주도에서 '송이'라 부르는 돌이다. 물을 촉촉이 머금은 송이를 밟으니 '사각 사각' 소리가 난다. 숲길 걷는 맛이 절로 났다. 영화제 행사장 입구에 펼쳐놓은 '레드카펫'을 걷는 게 이런 느낌일까. 양말까지 벗고 맨발로 '소리 나는 붉은 양탄자' 위를 걸으며 자연과 호흡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이곳이 바로 '사려니 숲길'이다. 사려니는 '숲 안'을 뜻하는 제주 말이다.
제주의 31개 숨은 비경 가운데 하나인 사려니 숲길의 모든 구간을 일 년에 딱 한 차례 개방하는 '에코 힐링(Eco-healing) 체험' 행사가 이날부터 시작됐다. 다음 달 5일까지 보름 동안이다. '에코 힐링'이란 자연 속에서 우리 몸의 치유력을 회복하고 몸·마음이 건강한 삶을 누리는 것을 의미하는 자연(ecology)과 치유(healing)의 합성어다.
가족과 함께 관광을 온 김경희(45)씨는 "안개가 자욱하게 낀 숲길을 걸으니 운치도 있고 생기가 솟는다"며 "자연이 주는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마시고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사려니는 해발 500~600m 지점에 자리 잡은 완만한 숲길이다. 이번에 개방되는 길은 조천읍 교래리 물찻오름 입구에서 출발 붉은오름을 거쳐 남조로까지 이어지는 코스(10㎞·편도 3시간)를 비롯, 남원읍 한남리 사려니오름에 이르는 코스(16㎞·편도 6시간), 성판악휴게소 앞 5·16도로까지 이어지는 코스(9㎞·편도 3시간)이다. 평상시에는 통제되는 사려니오름 코스와 성판악휴게소 코스의 숲속 비경을 즐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사려니숲길의 중심에는 물찻오름이 있다. 백록담과 함께 몇 안 되는 담수호다. 사려니숲길은 물찻오름을 가기 위해 다니던 길이다. 하지만 이 길이 유명해지면서 훼손문제로 2년째(올해 말까지) 출입이 통제돼 있다. 이 길을 가지 못해 애타는 심정은 붉은오름으로 달랠 수 있다. 붉은오름은 제주 동부지역의 전망대 구실도 한다.
사려니오름 코스에 들어서면 80년 가까운 풍상을 견뎌온 삼나무 1850그루가 평균 30m 높이로 죽죽 도열해 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구경거리다. 사려니오름 정상에 서면 동쪽으로 성산일출봉이, 남쪽으로 서귀포 바다와 섬들이 보인다. 서쪽으로는 산방산이 있고, 북쪽으로는 물찻오름이나 붉은오름 같은 교래리 오름 군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어느 쪽에서건 내려다보이는 제주의 전경은 일품이다.
강만생 사려니숲길 위원장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자연학습·임산물 전시관·숲속사진전과 '전문가와 함께하는 숲길 탐방', 숲체조·명상체험, 암반욕, 환경 골든벨, 숲 백일장 등의 행사가 열린다"며 "행사 마지막 날인 다음 달 5일에는 '접시꽃 당신'으로 유명한 도종환 시인이 나와 '숲에서 길을 묻다'를 주제로 특별강연이 있을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