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황우여 원내대표 간 '19일 회동'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것은 18일 저녁부터였다. 그러나 양측 관계자들은 "배석자 없이 두 사람만 만나기 때문에 시간과 장소는 모른다"고 했다. 황 원내대표는 이날 밤 본지와의 통화에서 "박 전 대표측이 비공개를 요청해서…"라며 "나도 내일(19일)이 돼야 (시간·장소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바뀔지도 모른다"고 했다.

19일 이른 아침 기자들 사이에서 두 사람이 오전 11시에 만난다는 소문이 돌았다. 황 원내대표의 일정이 이때 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황 원내대표는 이날 아침부터 수행비서를 떼어놓고 혼자 다녔다. 그는 기자들의 전화가 빗발치자 "만남이 끝나면 얘기해줄게요"라고 했다. 11시 회동 사실을 부인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장소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박 전 대표의 서울 삼성동 자택 부근 I호텔, P호텔, M호텔 등이 후보지로 거론되기 시작했고 취재·사진·TV촬영기자 20여명이 I호텔로 몰려갔다. 그러나 시간이 돼도 두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기자들 때문에 장소가 바뀌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오전 11시 40분쯤 황 원내대표가 I호텔에 혼자 나타났다. 그는 "기자들이 여기서 고생했다고 보고받았다. 미안하다"며 "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다른 호텔에서 박 전 대표와 만났다. 오후에 내용을 말해주겠다"고 했다. 두 사람은 '007작전'처럼 기자들을 따돌리고 만나는 데 성공했다.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기자들이 카메라 가져 와서 찍고 하면 결과적으로 보여주기식(式), 형식적인 만남으로 그치지 않았겠느냐"며 "진정성 있는 대화 자리를 만들기 위한 것으로 좋게 이해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친박(親朴) 의원들조차 같은 당 소속인 두 사람이 굳이 비밀리에 만나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속 시원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朴心담긴 수첩…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만난 황우여 원내대표가 19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들에게 회동 내용을 브리핑하며 펼쳐든 수첩.‘ FTA’등의 글자가 보인다.

오후 2시 20분 국회 원내대표실. 황 원내대표가 기자들을 불렀다. 테이블 위에 작은 수첩이 꺼내져 있었다. 그는 수첩에 적어 놓은 메모를 보며 "정당정치 개혁에 후퇴는 있을 수 없다"(당권·대권 분리 당헌 개정 반대) "계파에 의한 전당대회라는 것을 불식시키기 위해 충분한 선거인단 확대는 필요" 등 박 전 대표의 '말'을 소개했다. 한나라당이 비상대책위원회까지 만들어 논의해온 내용으로 비대위는 의원들에 대한 설문조사와 의원총회를 거쳐 다음주에 결론을 내기로 한 사안들이다. 박 전 대표의 입장이 알려지자 일부 반대 의견이 나왔지만 당내 논란은 거의 사라졌고 박 전 대표 뜻대로 정리됐다.

박 전 대표는 지난 6일 유럽 방문 때 가진 간담회에서 정치 현안 질문이 나오자 "그 얘기는 한국에 돌아가서 하죠. 얘기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라고 했었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본인의 육성(肉聲) 대신 황 원내대표가 적은 메모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당내에선 "대표 권한대행인 현직 원내대표가 마치 결재를 받아 그 결과를 발표하는 듯한 모양새로 비친 것은 부적절한 것 아니냐"는 부정적 시각도 적지 않았다. 민주당은 논평에서 "신하가 여왕님께 보고하듯 보고하고 확인받았다고 한다. 대한민국이 여왕시대이고, 총리대신이 여왕에게 가서 보고하는 것인가"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