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월 치러질 페루 대선과 7월 태국 총선에서 각각 야권의 여성 정치 신인(新人)들이 첫 여성 대통령·총리에 도전하고 있다. 페루의 대선 지지율 1위인 게이코 후지모리(35) 상원의원과 태국 퓨타이당 총리 후보인 잉럭 시나왓(43). 각각 부패 문제로 쫓겨난 전직 지도자의 딸, 여동생이다. 두 사람 다 아버지와 오빠의 정치적 유산을 물려받아 초고속으로 성장했지만, 그들이 남긴 부채도 직접 청산해야 하는 입장이다.

페루 대선 지지율 1위를 달리는 게이코 후지모리 후보가 지난 12일 기자회견을 하며 미소 짓고 있다. 오른쪽사진은 그녀의 아버지인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

게이코 후지모리 "아버지 사면 않겠다"

일본계 이민 3세인 게이코 후지모리는 1990년대 통치 기간 저지른 학살과 횡령·부패로 25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알베르토 후지모리(73) 전 대통령의 딸이다.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2004년 게이코의 결혼식 때 일본에 도피하느라 참석도 못했다. 그런 아버지의 딸이 지난 4월 대선 예선투표에서 좌파 후보에 이어 2위를 차지한 뒤 6월 5일 결선투표를 앞둔 현재는 지지율 1위에 올라 역전극을 펼치고 있다. 그는 부모의 이혼으로 17세 때부터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한 것과 미국 컬럼비아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경력이 전부다. 그는 아버지가 대통령이던 시절 이뤘던 경제성장에 대한 국민의 향수를 등에 업고 2006년 페루 총선 사상 최다득표로 정치에 입문해 차세대 우파 정치인으로 인기를 이어왔다.

그러나 딸이 대선 고지(高地)라는 9부 능선을 넘은 힘은 '아버지와의 차별화'다. 게이코는 대선 예선투표 직후 TV에 나와 "아버지의 재임 시절 일어났던 잘못을 인정하고 국민들께 사죄한다"며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아버지를 사면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주요 공약도 광산업자에 대한 초과이득세 부과, 사형제 도입, 교도소 증설 등 부패 척결이 핵심 테마다. 16일엔 테러와의 전쟁으로 명성을 날린 미국의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을 공공안전정책 특보로 영입하며 법질서를 바로 세우겠다고 선언했다.

잉럭 시나왓이 16일 태국 퓨타이당의 총리 후보인 비례대표 1번으로 지명된 뒤 방콕 당사를 방문해 인사하고 있다. 오른쪽사진은 그녀의 오빠인 탁신 시나왓 전 태국 총리.

잉럭 시나왓 "국민화합과 정의 이뤄낼 것"

태국 제1야당 퓨타이(태국공헌)당은 16일 새 당수이자 총선 비례대표 후보 1번에 정치 경력이 전무한 미모의 여성을 올려놨다. 7월 3일 총선 승리 시 총리가 되는 자리다. 탈세와 토지 부정취득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2006년 쿠데타로 축출된 탁신 시나왓(62) 전 총리의 막내 여동생이었다.

중·상류층의 지지를 기반으로 한 현 집권여당의 인기가 떨어지자 퓨타이당은 과거 파격적인 복지정책으로 서민의 인기를 얻었던 시나왓 전 총리 시절을 재현하기로 했다. 미국 켄터키주립대에서 정치학 석사를 딴 뒤 가족기업인 통신회사와 부동산개발업체를 경영해온 전 총리의 여동생이 '신선하다'는 이유로 낙점됐다.

잉럭 시나왓은 오빠의 부패와 정쟁, 계층 갈등이란 유산은 물려받지 않겠다는 듯 "법에 따라 정정당당하게 선거를 치를 것이며, 승리하더라도 절대 정치 보복을 하지 않겠다"며 "화합의 정치로 경제 발전과 정의 구현을 이뤄내겠다"고 약속했다.

시나왓 전 총리도 망명지인 두바이에서 방콕 언론과 인터뷰에서 "동생은 나의 대리인이 아니며, 동생이 총리가 되더라도 나의 정계 복귀가 보장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