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짝 거리의 퍼트에 희비(喜悲)가 엇갈렸다. 16일(한국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폰테 베드라비치의 소그래스TPC 스타디움코스(파72)에서 열린 PGA투어 플레이어스챔피언십 최종 4라운드. 17번홀(파3·130야드)에서 치러진 연장 첫 번째 홀에서 최경주(41)와 데이비드 톰스(44·미국)가 나란히 짧은 파 퍼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최경주는 1m, 톰스는 1.5m를 남겨둔 상황. 그린이 까다롭긴 해도 어렵지 않은 거리였다. 그러나 톰스가 친 공은 홀 끝을 살짝 돌아 나왔다. 경쟁자의 실수를 본 최경주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서 더욱 반짝이는 최경주의 두 눈은 발끝에서 멀지 않은 홀을 노려보고 있었다. 침착하게 파 퍼트를 성공한 최경주가 비로소 환하게 웃었다. PGA투어 무대에서 처음으로 벌인 연장전을 승리로 장식한 최경주는 우승상금 171만달러(약 18억7000만원), 톰스는 102만6000달러를 받았다. 1m짜리 퍼트가 68만4000달러(약 7억5000만원)의 보너스를 안겨준 셈이었다.
소그래스TPC 스타디움코스 마지막 3개 홀은 까다로운 코스 세팅으로 악명이 높다. 최경주는 미 PGA투어가 "가장 위험하며, 가장 인상적인 마무리 코스"라고 소개한 16~18번홀에서 '역전 드라마'를 완성했다.
4라운드 16번홀(파5·523야드) 티잉 그라운드에 섰을 때 최경주는 중간 합계 12언더파로 톰스에 1타 뒤진 2위였다. 하지만 최경주는 어려운 상황에서 파를 지켰고 톰스는 세컨드샷을 물에 빠뜨리며 보기를 기록하는 바람에 공동 선두가 됐다.
최경주는 이어진 17번홀에서 승부수를 던졌다. 티샷을 홀 옆 3m에 붙인 최경주는 까다로운 내리막 버디 퍼트에 성공하고서 오른 주먹을 불끈 쥐었다. 1타차 단독 선두로 나선 최경주가 가장 어렵다는 18번홀(파4·462야드)에서 파를 지킨다면 우승이 가능해보였다.
최경주는 18번홀 그린 옆에서 친 세 번째 샷을 홀 옆 1.5m에 붙이며 파를 예약했다. 그러나 톰스의 뒷심도 만만치 않았다. 톰스는 5m가 넘는 버디 퍼트에 성공하며 기어이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최경주와 톰스는 연장전을 위해 다시 '마(魔)의 17번홀'로 돌아갔다. 그린이 워터해저드 가운데 섬처럼 솟아있는 이 홀은 거리는 짧지만 바람을 가늠하기 어려워 많은 골퍼들이 공을 물에 빠트리고 한숨을 짓는 곳이다. 올해 대회에도 4라운드 5차례를 포함해 총 39개의 공이 수장(水葬)됐다. 그러나 앞서 17번홀에서 버디를 잡았던 최경주는 자신이 있었고 행운도 최경주의 편이었다.
9번 아이언으로 친 최경주의 티샷은 그린에 올랐지만 다소 길어 홀에서 12m나 떨어진 곳에 멈췄다. 5.5m 버디 퍼트를 시도하는 톰스가 훨씬 유리해 보였다. 둘 다 버디 퍼트는 실패. 그러나 톰스는 파 퍼트를 놓친 반면 최경주는 1m짜리 챔피언 퍼트를 성공시키며 '제5의 메이저대회' 우승컵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