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시운.

컴백홈

황시운 장편|창비|292쪽|1만1000원


공교롭게도, 다시 서태지다.

1992년 4월 11일 MBC '특종! TV연예' 신곡무대 코너에서 '난 알아요'를 부르며 초조하게 평가를 기다리던 서태지. 평균 7.8점의 최하 점수로 초라하게 데뷔하던 그 순간에 태어난 아이가 있다. 이름만 따뜻한 봄빛산부인과, 개원 이래 최우량인 4.78㎏의 몸무게로 태어난 아이 박유미. 그 예쁜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이 왕따 여고생은 지금 '슈퍼울트라 개량돼지'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0.1t을 가볍게 돌파해버린 몸무게 때문이다.

결혼과 이혼 스캔들로 '서태지 신화'가 무너졌다고 해서, 당시의 10대들이 서태지를 희망과 탈출의 아이콘으로 삼았던 이유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1976년생으로 '서태지 키드'와 같은 세대인 작가는 '학교지정 공식 왕따'인 유미에게 꿈을 부여한다. 언젠가 다이어트에 성공해 서태지와 함께 지구 중력의 6분의 1인 달로 가게 될 거라는. 이 황당한 상상력이 가슴 먹먹한 이유는, '슈퍼울트라 개량돼지'가 학교에서 당하는 신체적 폭력과 언어폭력, 그리고 금전적 갈취의 강도 때문이다. 학원 수학강사 출신인 작가는 요즘 10대들의 적나라한 언어 사용을 가감 없이 받아쓰면서, '박유미'로 대표되는 소외된 요즘 아이들이 내던져진 이 동정 없는 세상의 잔혹함을 새삼 환기(喚起)시키고 있다. 어쩌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소재주의가 아닐까 의심이 들 만큼, 그의 묘사는 구체적이고 적나라하다.

<div style="text-align:center"><span style="padding: 0 5px 0 0;"><a href= http://www.yes24.com/24/goods/5123362?CategoryNumber=001001017001007001&pid=10671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chosun.com/books/200811/buy_0528.gif width=60 height=20 border=0></a></span><

유미가 달로 가기 위해 벌여야 하는 또 하나의 전쟁이 있다. 0.1t이라는 숫자에서 짐작하겠지만, 살과의 싸움이다. 유미는 '프로 아나'라는 인터넷 카페에 가입해 행동지침을 실천한다. 프로 아나는 찬성을 뜻하는 프로(Pro)와 거식증을 뜻하는 아노렉시아(Anorexia)가 합쳐진 신조어. "마른 몸을 지향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미사여구로 포장했지만, 결국 폭식과 절식, 그리고 인위적 구토를 통해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자기 학대에 다름아니다.

제4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인 이 소설에는 어설픈 희망이나 섣부른 대안은 없다. 함께 아파하며 일단 견뎌보자고 제안할 뿐이다. 참으로 우울하지만, 어쩌면 이 비정한 세상을 버티는 현실적 방법일지도. 발랄한 문체에 담은, 잔혹한 성장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