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와일러의 코미디 '멋쟁이 도둑'(How to steal a million·1966년)은 파리 어느 박물관을 기발하게 터는 한 쌍의 이야기다. 오드리 헵번과 피터 오툴은 낮에 전시실 청소도구함에 구겨지듯 숨어든다. 둘은 밤에 부메랑으로 조각상 주변 적외선을 건드려 경보를 울린 뒤 다시 숨기를 되풀이한다. 박물관 사람들은 여러 차례 소동을 벌이지만 아무 일도 없자 아예 경보기를 꺼버린다. 둘은 여유 있게 조각상을 집어들고 나온다.
▶1911년 루브르 박물관에서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도둑맞았다. 화가 피카소, 시인 아폴리네르까지 경찰 조사를 받았다. 평소 "상상력을 마비시키는 박물관을 파괴해야 한다"고 떠들어 왔기 때문이다. 두 해가 지나 잡힌 범인은 루브르에서 일했던 이탈리아인이었다. "이탈리아 사람이 그렸으니 이탈리아에 있어야 한다"며 피렌체에서 미술상에게 팔려다 붙잡혔다.
▶1990년 보스턴의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에서 베르메르·렘브란트·드가의 그림 13점, 3억달러어치가 도난당했다. 미술관은 현상금 500만달러를 내걸었지만 지금껏 범인도 그림도 흔적이 없다. 2008년 취리히 뷜러재단에서 3인조 무장강도가 떼어 간 세잔의 '붉은 조끼를 입은 소년'도 감감무소식이다. 1974년 북아일랜드공화국군(IRA)은 개인 미술관에서 800만파운드어치 그림 19점을 훔친 뒤 투옥된 동료와 맞바꾸자며 '예술품 납치극'을 벌이기도 했다.
▶우리도 수수께끼 같은 미술품 도난사건이 있다. 1967년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 고구려 불상이 사라졌다. 범인은 그날 밤 11시 문화재관리국에 전화를 걸어 "한강철교 제3교각 16·17번 침목 받침대 사이 모래밭에 뒀으니 찾아가라"고 했다. 불상은 돌아왔지만 범인은 오리무중이다.
▶중국 고궁박물원(자금성)에서 16억원어치 공예품 7점을 훔친 범인이 엊그제 붙잡혔다. 이 청년은 지난 8일 낮 10m 성벽에 둘러싸인 전시실 벽에 구멍을 뚫고 들어가 숨어 있다가 밤에 물건을 훔친 뒤 버젓이 걸어서 나왔다. 1600개나 되는 경보기가 하나도 울리지 않았다. 영화 '멋쟁이 도둑'처럼 첨단 보안시설만 믿은 자금성이 허를 찔렸다. '도둑맞으려면 개도 안 짖는다'는 속담이 있다. 첨단을 달리는 시대라 해도 시스템과 매뉴얼만 떠받들다간 도둑 한 명의 상상력을 따라잡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