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성남 분당을 보궐선거에 당선돼 9년 만에 국회로 복귀한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쓰던 의원회관 301호를 배정받았다. 의원회관 3층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의 방이 있던 곳으로 국회에선 '길층(吉層)'으로 불린다. 손 대표의 한 측근은 "대권 도전의 길조 같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민주당에선 "손 대표의 앞길이 순탄치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더 많다. 한 중진의원은 "한·EU FTA 비준처럼 비교적 이견이 없는 사안을 놓고도 민주당은 자중지란에 빠졌다"면서 "손 대표가 중도와 진보 사이에서 자세 잡기가 정말 애매한 상황"이라고 했다.
손 대표는 한·EU FTA 비준 과정에서 박지원 원내대표가 한나라당과의 협상에서 합의처리를 약속한 데 대해 처음에는 동의했다가 당내 반발 때문에 입장을 바꿨다. "비준안 통과를 막지 못해 국민에게 죄송하다"고까지 했다. '열린 통상국가를 지향해야 한다'는 평소 생각과도 사뭇 다른 자세다. 민주당의 고위당직자는 "진보와 중도에 끼어 양쪽의 눈치를 다 봐야 하는 손 대표의 지금 처지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했다.
당시 정동영 최고위원 등 FTA 반대파는 "당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반대의 길로 갔더라면 민주당은 낭떠러지에 떨어졌을 것"이라고 했다. 진보신당은 "유사한 사태가 재발할 경우 야권연합이 파기된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압박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손 대표가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었겠지만 한·EU FTA를 빌미로 당내 비주류가 '반(反)손학규'로 힘을 모으는 모습에 결국 생각을 바꿨을 것"이라고 했다.
손 대표가 대선후보 지지율에서 야권 내 경쟁자들을 압도하지 못하는 한 '줄 타기'는 계속될 것이란 분석이다. 민주당이 FTA 반대파인 민주노동당·진보신당 등과 선거·정책공조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지율로 압도하지 않는 한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손 대표의 측근들도 "손 대표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었다가는 자칫 모든 책임을 뒤집어쓸 수도 있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념적 차이를 무시한 야권연대에 대해 의문을 갖는 의원들이 많다. 손학규 계(系)인 정장선 의원은 "대북관계, FTA 같은 이슈는 우리 당과 민노당은 노선 자체가 다르다. 이번 기회에 분명히 정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비주류측 강창일 의원도 "분당을 보궐선거에서 봤듯이 손 대표의 상품 가치는 중산층을 껴안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손 대표의 한 측근은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타이밍이 모든 것이다(Timing is everything)'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중도층을 잡지 않으면 대선에 이길 수 없다는 점을 우리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최근 '민주당의 혁신'을 제기한 손 대표가 공천제도 개혁, 외부인재 영입에 올인(다 걸기)하면서 '돌파구'를 찾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