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전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사는 남편에게 만삭의 아내는 "출산 도중 애가 죽었다"고 거짓말하고 태어난 지 한 달 된 아들을 몰래 미국으로 입양 보냈다. 그 아들이 보름 전 핏줄을 찾아 한국으로 와 28년 만에 가족들을 만나고 지난 2일 미국으로 돌아갔다.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아버지는 아들(기충성·28)에게 이메일로 편지를 써 보냈다.

"오늘이 우리가 너와 함께하는 첫 어린이날이구나. 오랜 시간 동안 네게 주지 못한 따뜻한 사랑과 관심을 네게 주려 한다. 아빠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작은 장난감을 가지고 뛰어노는 네 모습을 그리고 있단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 진심으로 너를 사랑한다."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미국으로 입양된 아들은 아버지보다 한 뼘은 더 큰 28세의 청년이 되어 부모를 찾아왔다. 기대석(56·사진 왼쪽)씨는 5일 아들에게 ‘진심으로 너를 사랑한다’는 편지를 썼다. 기씨는 “오늘은 우리 아들의 첫 번째 어린이날”이라고 했다.

충성씨가 태어난 1983년, 기대석(56)씨와 이순자(55)씨 부부는 서울 은평구 응암동의 반지하 단칸방에서 세 살 된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이씨는 둘째를 임신 중이었고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단란했다. 그러나 기씨가 그해 10월 간암 말기 판정을 받으면서 모든 것이 무너졌다. 서울대병원에서는 길어야 두 달 더 산다고 했다. 한 달 수입이 25만원이었는데 병원비가 일주일에 100만원이 넘었다. 병원비를 대느라 기씨 부모님이 집을 팔았다.

사경을 헤매는 남편 병상을 지키던 만삭의 이씨는 그해 12월 충성씨를 낳았지만 아버지와 아들 모두를 위해 해외 입양을 결심했다. 항암치료를 받느라 몸무게가 38㎏까지 빠진 기씨에겐 "출산 중 아이가 숨졌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의사도 포기했던 기씨가 암을 이기고 일어났다. 취직하고 검정고시를 봐 고등학교 졸업장을 땄다. 1997년 경기대학교에 입학했고 명지대학교에서 석사과정도 마쳤다. 현재는 작은 기업의 이사로 근무할 정도로 성공적인 삶을 일궜다. 그는 "죽은 아들의 삶을 대신 산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살았다"고 했다.

그동안 아들 충성씨는 미국의 한 가정에서 자라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시에서 한 의류매장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었다. 한국 이름을 간직하고 있던 충성씨는 친부모가 궁금하고 그리웠다. 2009년 12월 미국에 있는 홀트아동복지회에 가족을 찾아달라고 신청했고 작년 12월 가족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기씨 부부도 아들이 가족을 찾는다는 연락을 홀트아동복지회로부터 받았다. 기씨는 "가족이 나를 속였다는 생각에 화도 났지만 아들이 살아 있다는 것이 고맙기만 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아버지는 아들을 처음 봤다. 아들의 목을 부여잡고 울었다. "니가 내 아들이구나. 내 아들이구나." 울음은 통곡이었다. 아들과 아버지를 지켜보는 어머니와 가족들도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기씨 가족은 지난달 27일 1박2일로 강원도 속초로 첫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