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보다 돌맹(멩)이가 몇갑절 더 많은 언양 땅. 산 좋고 바람 좋고 물맛이 좋은 이곳에 언양소년단과 불교소년단이 있다. 매일 새벽 5시만 되면 모두 일어나 나팔을 불고 함께 운동하고 청소하고 조기회를 한다. 그 거룩한 나팔소리를 듣고 싶다〈중략〉 모든 것이 쇠잔한다 하여도 온갖 것이 모두 망한다 하여도 언양에는 새로운 싹이 잘 클 것이다. 새로운 생명이 뛰면서 커갈 것이라 기대한다.'
소파 방정환 선생은 언양 어린이들에 대한 인상을 이렇게 글로 남겼다.(1926년 6월 어린이 41호) 선생은 27세 때인 1925년 8월 1일 아동문학가 신고송이 지도하는 언양조기회를 방문했고, 그 때 받은 잊지 못할 감동을 그렇게 기록했다.
소파 선생은 울산과 적지 않은 인연이 있다. 추전 김홍조의 아들인 김택천의 자서기(自敍記)에 1924년 6월 선생을 자신의 집에 초대해 한 달간 함께 지냈다고 기록돼 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동요와 동시를 강습하고 동시 작가 서덕출을 사사했다는 기록도 있다. 또 1925년 7월에 울산성우회가 주최한 동화동요대회에 참석해 특강을 했다. 이후에도 울산의 신고송, 서덕출과 꾸준히 교류했다.
신고송은 언양소년단원으로 활동하던 17세 때 '어린이'(잡지)에 독자 편지를 보낸다. "그 어여쁜 신년호가 나의 책상 앞에 나타날 때에 내 마음은 항상 기꺼워집니다. 유익하게 재미있는 이솝 이야기를 좀 더 많이 내 주십시요(오)."(1924년 2월 15일) 서덕출도 '어린이' 창간 7주년을 축하하는 글을 보냈는데 "어린이(잡지)는 정말로 어머니보다도 아버지보다도 어린 사람들의 심정을 잘 보살펴 주었고, 힘없는 동무들에게 원기를 돛과(돋워) 주었다"고 썼다.
1920년대 울산에는 '어린이데이'라는 행사를 치를 만큼 어린이 단체가 많았다. 1922년 10월 언양소년회를 필두로 1923년 6월 울산초등과 병영초등이 연합해 울산어린이회를 결성하고 그 뒤 학성 강정 유곡 성남 소년회가 구성되었다. 1924년 3월 언양불교소년회, 삼남의 신화소년조기단과 병영 진장 대현 범서 두서 하북면에 소년회가 조직되었다. 그러다 1928년 제6회 어린이날에는 5가지 실천사항을 다짐하는 선전지를 돌리며 연합해 시가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오늘은 89번째 어린이날이다. 울산 출신인 신고송과 서덕출의 동시를 울산의 어린이들이 맑고 밝은 합창으로 부르는 행복한 기대를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