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젤리제(프랑스어로 '천국의 들판'이란 의미)냐, 샹에트랑제(외국인의 들판)냐?
프랑스인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라고 자부하는 파리 샹젤리제. 하지만 중저가 외국 패션브랜드 간판이 거리를 속속 점령하면서 프랑스 고유의 색채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논란에 불을 붙인 것은 '애버크롬비앤피치'로 젊은 층을 상대로 한 미국의 캐주얼 패션 브랜드이다. 이 기업은 보증금 220만유로(35억원), 연임대료 330만유로(53억원)에 샹젤리제 거리의 연면적 1100㎡, 3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빌렸다. 오는 19일 개점을 목표로 개조공사를 하면서 건물 외벽을 '웃통 벗은 근육질 남성' 사진으로 도배해 놓았다.
현재 샹젤리제 거리엔 스웨덴의 H&M, 미국의 토미 힐피거와 갭, 스페인의 자라 등 외국산 중저가 패션 가게들이 즐비하다. 최근엔 10여년 전 철수한 영국의 막스앤스팬서도 재진출을 준비 중이다. 샹젤리제 거리엔 도요타, 메르세데스 벤츠 등 외국 자동차 대리점도 많다. 미국 문화의 상징 격인 디즈니랜드 기념품 가게와 맥도널드가 자리 잡은 것은 오래전 일이다. 이들은 샹젤리제를 찾는 연 1억명의 유동인구를 대상으로 브랜드 광고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반면 프랑스 공공기관과 토종업체들은 천문학적 건물 임대료(1㎡당 연 임대료 1만유로·1600만원)를 견디다 못해 샹젤리제에서 밀려나고 있다. 올 초엔 샹젤리제에 마지막 남은 공공기관인 우체국마저 문을 닫았다. 우체국 폐쇄는 지식인들 사이에 샹젤리제의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여론을 촉발했다. 파리시장 통상자문관 린느 코엔 소랄은 "이런 추세로 가면 샹젤리제는 옷가게 거리로 전락할 것"이라고 개탄하며, 샹젤리제 보호 운동을 촉구하고 있다. 일부 파리 시민들은 매년 7월 프랑스대혁명 기념행사가 열리는 샹젤리제 거리가 중저가 외국 패션에 점령당하게 방치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논란이 샹젤리제 거리를 외국브랜드로부터 지켜주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파리시는 샹젤리제의 정체성을 지킨다며 H&M의 입점을 막기 위해 소송까지 제기했으나 결국 막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