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전쟁
로저 로웬스타인 지음|손성동 옮김
한국경제신문 | 420쪽 | 1만9800원
다 같이 잘살자고 시작한 일이 다 같이 깡통 차는 사태로 발전할 수 있다. 미국 기업과 지방자치단체가 무분별하게 복지를 확대하다가 어떻게 망가졌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미국과 우리는 시스템이 다르다. 그러나 고령화의 파도가 우리만 비켜갈 리는 없다.
월스트리트저널 출신 베테랑 기자가 실제 사례 세 가지를 가차없이 해부했다. ▲자동차 회사 제네럴모터스(GM) ▲뉴욕시 ▲샌디에이고시가 형광등 아래 발가벗었다.
◆연금에 목 졸린 GM
2005년 GM은 창사(1908년) 이래 두 번째로 많은 매출을 올렸다. 그래도 손실이 106억달러나 났다. 저자는 원인을 찾아 대공황까지 거슬러 갔다.
미국은 1935년 전국을 아우르는 사회보장제도(Social Security)를 도입했다. 저소득층 대상 메디케이드와 노인 대상 메디케어를 양대 축으로 하는 건강보험도 만들었다. 그러나 보장 수준이 너무 낮았다. 미국 근로자들은 정부 대신 기업에 복지 욕구를 풀었고, 건강보험 확대와 퇴직연금 인상을 쟁취했다. 1949년 GM과 전미자동차노동조합(UAW)의 협상이 대표적이다. 노조 지도자 월터 루서는 "5년간 파업 안 할 테니 퇴직연금을 올려달라"고 했다. 당장 월급 올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먼 미래에 연금 달라는 얘기니까 GM은 쉽게 생각했다. 자동차가 없어서 못 팔던 호시절이었다.
GM은 이후 임금협상 때마다 현재의 월급은 소폭 올리고 미래의 연금은 대폭 올렸다. 그러면서 장차 연금 줄 돈을 적립하는 건 게을리했다. GM 차는 비싸졌다. 2000년대 들어 GM 차 한 대 값에 포함된 복지비용이 1525달러에 달했다. 도요타가 차 한 대 팔아서 버는 돈이 GM에서는 근로자와 퇴직자의 건강보험 비용으로 나갔다.
GM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갈수록 차 팔기는 어려워지는데 월급 받는 직원(18만명)보다 은퇴 후 연금 타는 직원(40만명)이 훨씬 많았다. 미국 언론은 GM을 '바퀴 달린 연금회사'라고 불렀다. GM은 2009년 연방정부에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가 간신히 회생했다. 지금 GM에 들어가는 근로자는 과거 같은 혜택은 꿈도 못 꾼다.
◆복지확대의 도미노, 뉴욕
1965년 12월 전미운수노동조합이 '주4일제'와 '퇴직연금 인상'을 요구했다. 존 린제이 당시 뉴욕시장이 단호하게 거부했다. 지하철이 멎은 도시에서 새해 첫날을 맞았지만 여론은 시장 편이었다. 그런데 파업 나흘째 풍향(風向)이 바뀌었다. 노조 지도자 마이클 퀼이 경찰에 붙잡힌 지 두 시간 만에 심장발작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움찔한 뉴욕시가 노조 요구를 대부분 수용해 13일 만에 파업이 끝났다.
원칙 없는 후퇴가 도미노를 불렀다. 경찰관·소방관·교사·환경미화원 등이 경쟁적으로 연금 인상을 요구해 관철시켰다. 2년 후인 1967년 전미운수노조 간부는 뉴욕시 관계자 앞에서 다시 협상 테이블을 탕탕 쳤다. "제기랄! 환경미화원 올려준 만큼 우리도 더 받아야겠소!"
1976년 뉴욕시는 파산 직전까지 갔다. 이를 계기로 시 의회가 공공부문 근로자의 연금을 결정하는 권한을 가져갔다. 정치인이 키를 잡자 사태가 더 악화됐다. 공공부문 노조들은 선거 때마다 거액을 쾌척하는 로비 세력이었다. 2005년을 기준으로 뉴욕 시내의 버스 운전사 평균 연봉(6만3000달러)은 고졸 근로자 평균 연봉(2만9000달러)의 두 배가 넘는다. 그래도 운수노조는 2005년 지하철 파업을 강행했다.
◆상호 야합한 샌디에이고
샌디에이고시도 문제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재정이 망가지자 납세자들에게 이실직고하고 세금을 올린 뉴욕과 달리, 샌디에이고시는 시 당국과 공무원노조가 손잡고 막판까지 시민들을 속였다는 점이 달랐다.
1990년대 중반 수잔 골딩 당시 샌디에이고 시장은 장차 상원의원에 출마할 욕심에 공화당 전당대회를 샌디에이고에 유치하고, 대회 비용을 공무원퇴직연금에서 끌어다 썼다. 노조는 이를 묵인하는 대신 퇴직연금 추가 인상을 챙겼다. IT 붐으로 주가가 연일 올라 아무리 펑펑 써도 공무원퇴직연금은 마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9·11 테러로 주식시장이 침체됐다. 닷컴 붐도 꺼졌다. 공무원퇴직연금은 2005년 17억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시 재정이 말라붙었다. 시 당국은 공립 도서관 개관 시간을 단축하고 방과 후 프로그램을 축소했다. 시장이 사임하고 관계자들이 줄줄이 기소됐지만 사후약방문이다. 시민이 화낸다고 빚이 어디 가진 않기 때문이다.
[무상복지 논쟁이 궁금하다면]
●신자유주의를 넘어 역동적 복지국가로(이상이 엮음·밈)=최근 무상복지 논쟁을 촉발한 책. 진보진영 학자들로 구성된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썼다. 이들은 '보편적 복지'를 추구한다. 그러나 진보진영에서도 "복지는 백년대계가 필요한데 치밀한 계산 없이 정치적 목적을 갖고 환상을 퍼뜨린다"는 비판이 있다.
[고령화 영향이 궁금하다면]
●고령화 시대의 경제학(조지 매그너스 지음·부키)=전 세계 65세 이상 노인 비중은 현재 10%에서 2050년 22%로 늘어날 전망이다. 저자는 세대 갈등·노인 빈곤·국가 재정 파탄을 막기 위해 지금 당장 ▲정년을 연장하고 ▲여성 일자리를 늘리고 ▲출산을 장려하고 ▲이민을 받아들이고 ▲연금제도와 요양제도를 재정비하라고 권한다.
[진짜 복지국가가 뭔지 궁금하다면]
●복지국가 스웨덴(신필균 지음·후마니타스)=복지논쟁이 무성하지만 정작 복지국가가 뭔지 상세하게 설명한 책은 드문 편이다. 20여년간 공부도 하고 일도 하며 스웨덴 사회를 깊숙이 들여다본 저자가 스웨덴의 교육·보육·여성·의료·주택·노동정책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복지국가를 낳은 문화적 토양과 역사적 배경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