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뉴욕시각) 열린 미국 연준의 정례 기자회견은 97년의 연준 역사상 최초라는 기록을 세웠지만, 소문난 잔치에는 먹을 것이 없었다.
이날 벤 버냉키 의장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미 전문가들이 예상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자회견에 앞서 공개시장위원회(FOMC)의 4월 통화정책 내용이 공개되면서, 버냉키 의장은 보충 설명에 그쳤다.
주요 외신도 버냉키 의장의 기자회견에 대해 "새로운 얘기가 없었다", "미지근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버냉키 의장은 준비된 원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보도했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정례 FOMC와 많이 다르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금융시장 반응도 요란스럽지 않았다. 버냉키 의장이 긴축기조로 전환할 시점을 밝히지 않음에 따라 달러화 약세가 지속됐다. 이날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화의 평균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 지수는 버냉키 의장의 발언이 나오기 전 73.612에서 73.284로 떨어졌다.
버냉키 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강한 경제가 달러화에 좋다”며 “현재 연준이 시행하는 정책은 중기적으로 달러화를 강하고 안정적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 6월에 양적완화 접어…긴축 시기 몰라
전체적으로 버냉키 의장의 기자회견은 양적완화가 끝난 뒤의 금융시장에 대한 전망과 연준 내 이사들(연방준비은행 총재) 사이에 의견이 분분한 금리 인상에 대해 연준의 입장을 확인하는 것으로 내용이 모아졌다.
버냉키 의장은 6월에 제2차 양적완화가 종료해도 금융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난 11월 실시한 국채 매입프로그램(제 2차 양적완화)가 계획했던대로 오는 6월 종료할 것을 다시 확인했지만, 금리 인상을 언제 단행할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제 3차 양적완화에 대해서도 “매력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버냉키 의장은 FOMC가 저금리 기조를 끝내기 전에 주목할 요소는 인플레이션과 실업률 등 경기 지표라고 설명했다. 최근의 경기 상황에 대해서는 “일시적으로 상품 가격이 상승한 것”이며, “높은 실업률이 떨어진다는 보장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FOMC 성명서에서도 같은 내용이 제시됐다. 연준은 FOMC 성명서에서 미국의 실업률은 계속해서 높은(elevated)수준을 유지할 것이며 고용창출의 속도는 계속해서 느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상품 가격 상승은 일시적이며 인플레이션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acceptable level)"로 하락할 것으로 기대했다.
고유가에 대해 버냉키 의장은 "최근과 같은 속도로 휘발유 가격이 계속 오를 것 같지 않다. 유가가 안정세를 찾고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물가 지표도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버냉키 의장은 지난 3월의 발언과 동일하게 "인플레이션이 받아들일 수 잇는 수준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버냉키 의장은 금리 인상 시기에 대해 "얼마나 빨리 대응해야 할 지 확실히 알 수 없다"고 말했지만 몇 차례의 ‘의미있는’ 회의를 거치게 될 것을 시사했다. 이날 성명서에서 연준 이사들은 "장기간(extended period)" 저금리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고, 이에 대해 버냉키 의장은 금리 인상을 결정하기 전에 "몇 차례의 회의(a couple of meetings)"를 더 거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신용평가사 S&P가 미국의 높은 적자를 문제 삼아 등급전망을 '부정적'으로 강등한 것에 대해 버냉키 의장은 "건설적(constructive)"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미국은 ‘불어나는 적자 해소’라는 매우 심각한 장기 과제를 안고 있지만 S&P의 결정이 의회가 장기 문제를 해결하는데 촉매제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부채 문제에 대해 "미국이 장기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경제적 문제"라고 덧붙였다.
◆ 성장률 전망 낮추고 물가 전망치 상향 조정
연준은 이날 FOMC회의에서 경제 성장률을 전망치를 낮추고 인플레이션 전망치는 올렸다.
연준은 미국 경제 회복은 “견조한 속도(moderate pace)”로 나아가고 있으며 고용시장도 “서서히 개선되고 있다(gradually improving)”고 평가했다. 지난 3월 FOMC회의 때 연준은 “경기 회복세의 발판이 더 견고해지고 있다(firmer footing)”고 평가한 적이 있다.
올해 GDP 증가율 전망치는 3.1~3.3%에서 3.4~3.9%로 내렸다. 인플레이션 전망치는 2.1~2.8%로 올려 범위도 넓어졌을 뿐만 아니라 연준의 목표치(2% 혹은 미만)보다도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 주목된다. 다만 2012년 전망치는 1.3~1.6%로 추산했다. 가격 변동이 심한 에너지식료품을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CPI)의 전망치도 1~1.3%에서 1.3~1.6%로 상향 조정됐다.
한편 1분기 경제 성장률은 느려진 것으로 판단되고, 올해 1~3월 GDP가 2%의 성장률을 보였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고 FT는 보도했다. 오는 29일 미국 상무부는 1분기 GDP 예상치를 발표한다.
◆ 연 8차례 FOMC 회의 중 4번만 기자회견 열어…차별화 전략은?
FT는 기자회견의 장기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고 분석했다.
연준은 버냉키 의장이 통화정책 결정에 대해 확실한 뜻을 밝히고 연준 이사들의 발언이 불확실하게 해석되는 것을 방지하자는 목적에서 기자회견을 열기로 결정했다. 또 연준의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해 투명성을 높일 수 있고 연준의 전망치와 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날 구체적으로 의문가는 부분들이 언급되지 않은 채 넘어갔다. 연준의 확실한 인플레이션 목표치도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고, 어떠한 통화정책을 사용해 경제 목표를 이룰지도 확실치 않다. 버냉키 의장이 연준을 떠나면 기자회견이 어떤식으로 자리를 잡을지도 주목된다고 FT는 덧붙였다.
연준은 연간 8차례에 걸쳐 FOMC를 여는데 이 중에 4번만 기자회견을 한다. 버냉키 의장의 회견이 없는 나머지 4번의 FOMC와 어떻게 차별점을 둘 것인지도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