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학수 스포츠부 차장

"부모님은 저에게 행운이 덜 따라준 사람들을 돕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죠. 작년 멕시코에서 열린 대회에서 로레나 오초아가 돕고 있는 어린이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골프장을 배경으로 스물세 살 여자 골퍼가 자선(慈善)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올해 미국 골프채널에 나오고 있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가 만든 30초짜리 이미지 광고다. 골프와 기부를 주제로 만든 이 광고의 주인공은 한국 골퍼 김인경이다.

그는 작년 멕시코에서 열렸던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하고 나서, 상금 22만달러(약 2억4000만원)를 모두 기부했다. 대회가 열린 멕시코와 자신이 선수 생활을 하고 있는 미국의 자선재단에 절반씩 나누어 기부했다. 그의 '통 큰 기부'를 미국 언론들은 작년 골프계 최고 미담으로 꼽았다. 박세리신지애, 최나연 등 그동안 꾸준히 기부활동을 해온 한국 선수들에 대해서도 재조명했다.

1998년 박세리가 US오픈 우승을 하면서 미 LPGA 투어에 몰려간 한국 선수들을 적지 않은 미국 팬들과 언론들은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영어도 못하면서 상금만 따가는 '골프기계'들이 미국 투어를 망가뜨린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짧은 기간에 미국과 일본의 골프 실력을 따라잡았던 한국 여자골프가 선행(善行)에서도 정상급으로 성장한 것이다. 이처럼 최근 한국 여자 프로골프는 세계 정상급 실력에 패션 감각으로 무장한 젊은 선수들이 등장하면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1978년 남자 골프대회의 부속 대회로 상금 일부를 나눠 받으며 어렵게 출발했던 한국 여자골프는 이제 남자골프를 능가할 정도로 몸집이 커졌다.

그런데 '성공 신화'의 주인공으로 칭찬받아야 할 한국 여자골프가 최근 '막장 드라마'나 다름없는 집안 싸움으로 지탄받고 있다. 지난달 기업가 출신인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 회장이 "선수 출신들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는다"는 목소리에 밀려 쫓겨나듯 중도퇴진한 이후, 협회 창립 멤버들을 중심으로 '권력 다툼'이 벌어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직무대행 선출 하루 만에 절차상 하자로 무효처리가 되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해고 위협에 노출된 사무국 직원들이 노조를 만들어 민주노총에 가입하고, 선배들의 행동에 반발하는 현역 선수들이 선수협의회를 결성하는 등 일련의 사태가 숨돌릴 틈도 없이 벌어졌다.

이 와중에 얼마 전 한·미·일에서 44승을 거둔 '한국 여자골프의 전설' 구옥희씨가 새 회장에 선출됐고, 역시 선수 출신인 강춘자씨가 수석부회장에 선임됐다. 하지만 전임 회장의 잔여임기 1년이 아니라 새로 4년을 하겠다는 신임 집행부에 대한 반발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절차상 적법성을 묻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이러다 보니 여자골프 대회를 후원해온 기업들은 "도저히 못 봐주겠다"며 슬슬 다른 스포츠 종목을 기웃거리고 있다. 대회 흥행에 중요한 TV 중계권 협상도 여전히 매듭지어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 모든 소동의 주역들에게 한국 여자골프가 진짜 대접받기 위해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