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권 신공항이 백지화되던 날, 한나라당의 영남권 재선 의원은 "표가 된다캐서 약속한긴데, 이렇게까지 번질 줄 알았나"라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후보 경선캠프와 대선캠프에서 공약담당이었다. 그는 "솔직히 경제성이니 뭐니 검토도 못했다. 누가 넣는 게 좋다고 해서 그냥 넣은 것"이라고 했다. 옆에 있던 3선 의원도 "선거 때는 표밖에 안 보이지"라고 거들었다.
한때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었던 정두언 한나라당 최고위원도 동남권 신공항이 급조된 공약이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는 11일 대구에서 가진 한 강연에서 "공약 만든 사람에게 물어봤는데, 당시 신공항 문제를 어떻게 할지 몰라 중앙당 공약이 아닌 지방공약에 넣어놓았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 최고위원은 "이거 언론에 나가면 큰일 날 이야기란 말을 우리끼리 했다"고도 했다.
정치인들의 '공약(公約) 돌팔매질'에 죽어나는 건 국민이다. 지역발전과 개발 공약 등으로 바람만 잔뜩 집어넣었다가 한순간에 터뜨리는 건 안 하는 것만 못하다. 이런 공약(空約)들이 하나 둘 쌓여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얻어낼 수 있을 때 하나라도 더 따내려고 사생결단 달려들면서 부작용만 커진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런 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수도이전 공약을 내걸어 선거에서 재미 좀 봤다"는 고백이 대표적이다. 2002년 대선에서 승리한 뒤 2년도 안 된 2004년 수도이전 공약은 위헌 결정이 났다. 2007년 대선 때는 여·야 모두가 충청표를 의식해 무산된 수도이전의 불씨를 살려 정부 부처 일부를 세종시로 옮기겠다는 약속을 경쟁적으로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된 뒤 이를 뒤집으려고 애썼지만 결국 무산됐고, 그 과정에서 국론분열만 심해졌다. 최근 전국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공기업 지방이전 등의 약속은 모두 선거후유증이다. 이처럼 정치인의 '재미' 때문에 우리가 지불한 갈등비용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몇 곳 되지 않는 지역에서 치러지는 4·27 재·보선에서 또다시 '공약전쟁'이 불붙었다. 강원지사 보궐선거에서만 여·야 후보들이 내세운 공약을 모두 실천하려면 20조원 가까운 돈이 든다. 이들 공약의 대부분은 타당성이나 현실성을 감안하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
이런 식이라면 내년 총선과 대선도 걱정이다. 국민을 자극하는 기상천외한 공약들이 엄청나게 쏟아질 것이 뻔하다. 공약대로만 하면 신공항이 수십 개 생기거나, KTX가 방방곡곡 깔려 집앞에서 바로 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공기업이 몇 천개 더 만들어져 동네마다 하나씩 본사가 오게 하겠다는 '뻥'도 있을 거다.
한때 비용검증 등을 통해 제대로 된 공약만 내놓게 하려는 매니페스토 운동이 활발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제재수단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이번 공약 논란을 계기로 이를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객관적 검증기구를 만들어 후보들의 공약을 평가하고 공개하자는 취지다. 예산이 문제라지만, 말도 안 되는 공약을 나중에 뒤치다꺼리하는 비용에 비할 바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