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 대피방송 하다 실종된 엔도 미키씨의 생전 모습.

“방송을 마치고 어딘가로 피했을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는데 딸은 지금까지 연락 한 번 없네요.”

3·11 대지진·쓰나미 이후 한 달이 지났지만 미에코(美惠子·53)씨는 아직 딸이 살아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일본 미야기(宮城)현 미나미산리쿠초(南山陸町) 공무원이었던 딸 엔도 미키(遠藤未希·24)씨는 지난달 11일 방재대책본부 2층 청사에서 마지막까지 대피방송을 하다가 실종됐다. 쓰나미에 휩쓸리면서도 끝까지 임무를 다한 말단 공무원 미키씨의 이야기는 일본과 세계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감동을 주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실종 한 달 만인 11일 어머니 미에코씨를 인터뷰해 미키씨의 짧지만 아름다운 인생과 마지막 나날들을 보도했다.

미키씨가 공무원이 된 것은 어머니의 권유 때문이었다. 미에코씨는 “너는 큰딸이니까 고향에 남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미키씨는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고향 마을 공무원이 되었다. 인구 1만7000명 바닷가 마을인 미나미산리쿠초는 1960년 칠레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로 큰 피해를 입은 이후 방재(防災)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2005년 10월 전담부서로 위기관리과가 신설됐고, 미키씨는 공무원 생활 4년차이던 작년 봄부터 이 부서에서 일했다.

미에코씨가 딸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쓰나미가 밀어닥치기 전날이었다. 이웃 마을 이시노마키(石卷)에 따로 살던 미키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남자 친구와 결혼하고 싶다”는 고백이었다. 미에코씨는 청사로 딸을 만나러 가 주차장에서 2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미키씨는 올해 9월 친척들과 친구 몇 명만 초대해 소박한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고 했다. “우리가 저축한 돈으로 피로연도 할 수 있어.” 미키씨는 부모가 반대할까봐 혼인신고까지 마쳤다고 했다. 그리고 “내일 집에 갈께”라고 한 말이 마지막이었다.

미에코씨는 쓰나미 며칠 후 방재본부 청사를 찾아갔다. 고향 사람들은 “대피방송 덕분에 살 수 있었다”며 고마워했다. 미에코씨는 눈물이 흘렀다. “내가 고향에 남으라고 하지만 않았어도….” 미에코씨는 “바다에서 줄곧 살아왔는데 바다가 모든 것을 빼앗아가버렸다”면서 “이 마을을 떠나고 싶지만 딸을 한번이라도 만나기 전까지는 움직일 수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