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중반을 넘어서자 미국은 걱정이 없는 나라처럼 보였다. 2차세계대전도 끝난지 벌써 10년이나 흘렀다. 잠깐 한국에서 피를 흘렸지만 유럽이나 태평양전쟁에 비하면 큰 희생을 치른 것은 아니었다.
‘메이드 인 USA’ 제품이 세계 시장을 휩쓸어 완전고용이나 다름없는 경제를 이룩해 낸 시절이었다.
당시의 유행어는 무엇이었을까. 스페인말로 ‘케세라 세라’(que sera sera)였다. 1956년 도리스 데이가 불러 세계적으로 히트한 노래다.
"어렸을 적 엄마에게 물었지. 나는 커서 무엇이 될까요. 예쁘게 될까요, 부자가 될까요. 엄마 말씀은 이랬지. 케세라 세라 …."
세대에 관계없이 이 팝송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노래엔 친절하게도 ‘케세라 세라’가 무슨 뜻인지 풀이까지 했다. 영어로 ‘whatever will be, will be’다. 우리말로는 ‘무엇이든 될대로 되라’쯤이 되겠다.
얼핏 자포자기 말처럼 들리겠지만 실은 그게 아니다. 먹고 살 걱정이 없으니 커서 무엇이 되려하든 그리 신경쓸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당시 노래들은 퍽 감미로웠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러브 미 텐더’(Love Me Tender)를 부른 것도 이 무렵이었다.
앳댄 얼굴이었지만 관능적인 몸매로 ‘케세라’를 불렀던 도리스 데이와 뭇여성들의 영원한 ‘스윗하트’프레슬리는 당시 미국의 우상, 곧 ‘아이콘’이나 다름없었다.
미국이 ‘케세라’를 부르는 사이 옛 소련은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스푸트니크 위성을 우주궤도에 쏘아올렸다. 얼마나 놀랐을까.
‘케세라’의 환상에서 깨어난 건 거의 4년이 지나서였다. 존 F. 케네디의 등장으로 내일에 대한 꿈과 비전을 심어준 까닭이다. 백악관에 머물렀던 기간은 짧았지만 케네디가 위대한 지도자로 꼽히는 것은 미국인들에게 ‘꿈깨라’고 외친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찌보면 경제란 것도 '케세라'와 '꿈깨라'의 사이클이 10년 주기로 반복되는 현상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미국은 물론 세계경제는 '케세라'의 호경기를 누렸다. 그러던 것이 글로벌 금융위기가 몰아닥쳐 불경기의 깊은 터널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언제쯤이나 '케세라'의 걱정없는 세상이 찾아올까. 마침 오늘은 도리스 데이가 88회 생일을 맞는 날이어서 모처럼 라디오나 TV에서 '케세라'가 울려 퍼졌다. 지금도 정정해 가끔 무대에 서는가 하면 동물보호운동가로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도리스 데이가 부른 2절은 참으로 희망적이다. "내가 커서 사랑에 빠졌을 적 애인에게 물었지. 우리 앞날엔 매일 매일 무지개가 떠있겠지. 그의 말은 이랬지. 케세라 세라 …."
‘꿈깨라’는 사람없이 ‘케세라’를 부르며 늘 무지개만 떠 있다면 얼마나 좋은 세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