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개를 투자해 9개를 건지고, 50개를 풀면 20개 남고…. 이런 말도 안 되는 '흥부식 투자'로 싸움을 벌이는 곳이 있다. 부산도시철도다. 기업·기관·단체 등으로부터 기증받아 갑자기 비가 내리면 시민들에게 빌려주는 '양심우산'이 그 싸움의 대상이다.
국내 최초의 한국형 무인 자동운전 경전철로 지난달 30일 개통한 부산도시철도 4호선 안평역 김종곤 역장은 같은 달 28일 부산은행측으로부터 기증받은 50개 양심우산이 "이번엔 얼마나 남을까?" 조마조마하다.
30일 오전 도시철도 1호선 동래역 고객서비스센터. 한편의 파란색 플라스틱 통엔 '양심우산'30여개가 꽂혀 있었다. 양심우산은 필요할 때 도시철도 역 안에 있는 고객서비스센터에 가서 이름과 주소, 연락처 등을 간단히 기록한 뒤 빌려 쓸 수 있다. 물론 나중에 반납해야 한다. 그렇지만 되돌려주는 시민들은 그리 많지 않다.
작년 6월 남부지방산림청은 1000개의 양심우산을 부산도시철도측에 기증했다. 이들 우산은 동래를 비롯해 서면·범내골·장산·해운대역에 각각 170개씩, 양산·남양산·부산대양산캠퍼스역에 각각 50개씩 나눠 비치됐다. 그러나 170개를 기증받은 동래역은 10개월여가 지난 지금 남아 있는 양심우산이 달랑 9개뿐이다. 범내골과 해운대역에도 각각 20여개, 70여개만 남아 있다.
서면역은 현재 양심우산이 100개가량 된다. 서면역 관계자는 "남부지방산림청 기증분 외에 다른 단체 등에서 기증해 준 것이 더해져 그나마 이 정도 남아 있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비가 오는 날 빌려 가서는 되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도시철도 관계자는 "기록된 연락처로 전화를 해서 돌려달라고 매번 독촉하기도 어렵고 연락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하소연했다.
전화하면 짜증내는 시민도 있다고 했다. 더욱이 양심우산 관리는 역무원들의 고유 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기증과 반납에 대해 전담하는 담당자가 없어 역별로 지금까지 모두 얼마나 기증받았는지도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이런 '비양심과의 힘겨운 싸움'은 이미 오래됐다. 최근 2~3년 동안만 농협 부산지역본부(1000개), 신세계백화점(500개), SK증권(700개), 부산정보대학(700개), 자유총연맹 수영구지회(400개), 현대백화점(150개) 등이 계속 기증해왔다. 또 역 주변 병원이나 교회, 봉사단체 등에서 20~30개 단위로 기증하는 경우도 있었고, 개인적으로 남는 우산을 "양심우산으로 써달라"며 2~3개씩 기증하기도 하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불과했다. 2~3개월 지나고 나면 그 수가 뚝뚝 떨어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번에 새 출발하는 '도시철도 4호선'에선 이 '양심의 셈법'이 달라지길 기대하고 있다. 부산교통공사 김동환 홍보과장은 "깨끗한 새 도시철도인 4호선이 '양심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최초의 전통을 세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