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천(60) 서울대 총장은 1일 오전 3시 53분 대학본부 직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서울대 행정관 4층 총장실을 나섰다.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대 노조원과 학생 300여명의 농성으로 사실상 12시간이 넘게 총장실에 감금됐던 그는 피곤한 표정이 역력했다. 심경을 묻자 "진정한 대화를 위해 계속 협의를…. 원칙을 지키고 협의하고…"라고 했다. 목소리는 떨리고 말끝을 제대로 맺지 못했다. 서울대 역사상 처음으로 교직원들이 행정관 건물을 점거한 채 총장의 퇴근을 저지하며 사실상 감금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본지 1일자 A1·12면 참조)
지난달 31일 오후 3시 30분 서울대가 '국립대학법인 서울대 설립준비위원회'(이하 설립준비위) 구성 발표를 위해 마련한 기자간담회를 서울대 공무원노조와 대학노조가 저지하면서 시작됐다.
◆메신저 연락받고 근무 중 집결한 대학 직원들
노조원들은 이날 오후 3시쯤 행정관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대학본부가 노조·학생 등 학내 구성원과 협의 없이 설립준비위 구성을 마무리 짓고 기자간담회를 연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한 것이다.
오후 3시 20분쯤 노조원들이 행정관 정문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300여명의 직원이 한꺼번에 밀려들자 4~5명의 청원경찰도 속수무책이었다. 노조원들은 중앙계단을 따라 총장실이 있는 4층으로 올라가 약 70m 길이의 복도를 점거하고, 기자간담회가 예정된 소회의실과 총장실 입구를 봉쇄했다. 노조원들은 총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등산용 방석과 스티로폼 깔개가 동원됐다. 오후 5시 30분쯤 스피커가 등장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 '바위처럼' 같은 민중가요 가사가 적힌 A4 크기 유인물이 배포됐다. 행정관 건물에 민중가요가 울려 퍼졌다.
◆총장 퇴근 저지하려 몸싸움
오후 6시 20분쯤 오 총장이 총장실을 빠져나가려 한다는 소문이 농성장에 돌기 시작했다.
노조원들은 "뒷구멍으로 나가면 쪽팔리는 짓이다" "만약 몰래 나간다면 사퇴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오후 9시 30분쯤 대학 처장단이 노조에 "더 이상 총장의 공무(公務)가 방해돼선 안 된다. 퇴근하겠다"고 통보했다. 오 총장이 일렬로 선 본부 직원과 보직교수들 사이에 서서 총장실을 걸어 나오자 노조원들은 "남자들 빨리 나와서 막아"라며 길목을 막아섰다. 이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져 앞사람 등 뒤에 바짝 붙어 걷던 오 총장의 안경이 벗겨지며 바닥에 떨어졌다. 오 총장은 총장실로 물러섰고 6시간을 더 갇혀 있어야 했다.
◆노조 "단식투쟁 등 계속 투쟁"
1일 오전 3시 16분 총장과 면담하고 나온 노조 집행부는 "총장의 진정성을 믿어보기로 했다. 일단 철수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김연옥 대학노조 서울대지부장은 "학교 측과 명확한 합의가 된 것은 절대 아니다. 단식 투쟁 등 다양한 방법으로 계속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관계자는 "교직원들이 근무 시간에 업무 대신 집회에 참가하고 행정관을 점거한 것은 불법적인 요소가 있다"면서도 "학교와 노조가 대화 채널을 어떻게 만들지 협의하는 게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고 말했다. 이날 오연천 총장은 총장실로 출근하지 않고 외부 일정만 소화했다. 서울대 국제협력본부에서 본지 기자와 만난 오 총장은 "노조와 다시 만날지 생각해보는 중이다. 지금 경황이 없어서…"라고 짧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