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작고한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공연 대기실에 색색깔 초콜릿인 '스키틀즈'를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단서가 하나 있었다. "노란색은 빼달라"는 것이었다.

유례없는 내한 공연 러시가 이어진 올해, 해외 유명 아티스트들은 감동과 함께 무성한 뒷얘기도 남기고 갔다. 이들은 공연에 앞서 '테크니컬 라이더(technical rider)'라는 '준비물 목록'을 보낸다. 어떤 이는 이 목록이 수백 쪽에 이를 만큼 까다롭다. 이 밖에도 팝스타들은 무대 밖에서 전혀 생각지 못했던 모습을 보여줬다.

3월 9일 공연한 기타리스트 산타나(64)는 작년 말 재혼한 아내와 함께 코엑스몰 아디다스 매장에 들렀다. 초록색과 검은색을 좋아하는 그는 이곳에서 "완벽한 색깔을 찾았다"며 검은색 천에 초록색 로고가 그려진 운동복을 샀고, 이 옷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공연 후 불고기와 찜닭을 테이크아웃해 아내와 함께 호텔로 들어갔던 그는 출국할 때도 같은 운동복 차림이었다.

(왼쪽부터)기타리스트 산타나 / 컨트리팝 요정 테일러 스위프트

산타나 하루 뒤에 첫 내한 무대에 올랐던 영국 밴드 아이언 메이든은 멤버들과 스태프 전원이 보잉757기를 전세 내서 세계 투어를 한다. 기장은 밴드의 보컬인 브루스 디킨슨. 한국 공연을 마치고 난 11일 일본 공연을 위해 도쿄 나리타공항에 착륙하기 9분 전, 대지진이 났다. 급히 기수를 돌린 디킨슨은 나고야공항에 일단 내린 뒤 일본 4회 공연을 모두 취소하고 다음날 이륙했다. 하루 렌트비가 3만달러, 기름값이 시간당 1만달러씩 드는 전용기에 스튜어디스 8명을 포함해 총 56명의 대식구를 끌고 왔던 이들은 한국에서 1회 공연만 하고 돌아가는 바람에 톡톡히 손해를 봤다.

올해 2월 공연을 마친 뒤 "최근 3년간 공연 중 오늘이 최고였다"고 말한 에릭 클랩튼(66)은 "공연장 전체에서 무선 인터넷이 가능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집에 있는 가족들과 수시로 인터넷 화상 채팅을 했기 때문이었다.

경력이 오랜 밴드들이 리허설을 대충 하는 것에 반해, 이글스는 1시간 30분 동안이나 리허설을 했다. 지난달 15일 열린 이들의 첫 내한 공연에는 40대 이상 중장년 남자 관객이 압도적으로 많아 '관객 물이 가장 나빴던 공연'으로 불린 한편, 마이바흐·벤츠·BMW·아우디 같은 최고급 승용차들이 올림픽공원을 가득 메워 '관객 차가 가장 좋았던 공연'으로 꼽히기도 했다.

지난 1월 내한 무대에 오른 스팅(60)은 요가 마니아로, 리허설 때도 무대 위에서 요가를 했다. 식사 때나 쉴 때는 늘 책을 읽었고, 와인 애호가이면서도 "투어 때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며 와인을 사양했다.

미국 컨트리 팝의 요정 테일러 스위프트(22)는 공연장 대기실을 온통 빨간색과 핑크색으로 치장했다. 준비물 목록에 향초의 종류까지 지정한 그녀는 대기실에 영화 '러브 액추얼리'를 틀어놔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와 함께 내한한 부모는 "우리 딸이 중·고등학교 때 학점이 모두 A였다"고 자랑했다. 그의 어머니는 공연에서 가장 열정적인 관객 30여명을 직접 뽑아 공연 후 대기실로 초청, 딸과 함께 사진 찍고 차를 마시도록 해줬다.

지진으로 일본 공연이 취소돼 한국에 1주 가까이 머문 미국 기타리스트 슬래시(46)는 녹음 장비를 갖고 호텔에 틀어박혀 앨범 작업을 했다. 호텔 로비에서 'DMZ 관광' 팸플릿을 본 그는 한국인 친구와 함께 하루 DMZ에 다녀왔다. 돌아와서는 "왜 그렇게 슬픈 곳을 관광지로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 재즈 피아노의 거장 키스 자렛(65)은 예전 일본 공연에서 연주 도중 관객이 박수를 쳤다는 이유로 중도에 퇴장해버릴 만큼 까다로운 사람이다. 척추가 좋지 않은 그는 특수 제작된 침대를 갖고 공연을 다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작년 10월 열린 그의 첫 내한 무대에서는 공연 전 이례적으로 관계자가 나와 "연주 도중 박수를 치지 말고 절대 사진을 찍지 말라"고 부탁했다. 앙코르 때 2층 객석에서 기어코 플래시가 터지자 모든 관객이 초긴장 상태가 됐다. 자렛은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말했다. "카메라가 없는 모든 분들께 감사하고… 사진 찍는 사람들을 나는 저주합니다." 그러나 한국 관객의 열광적 반응에 감탄한 그는 6월 2일 다시 서울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