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눈물 없이 당신을 기억할 수가 없네요. 재능이 많아 나눌 것은 넘치고 하루를 일생처럼 치열하게 살았던 당신."(고 이태석 신부 선종 100일 때)
직장암이 전이돼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이해인 수녀가 긴 세월 우정을 나누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타계한 지인들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편지를 썼다. 소설가 박완서 선생, 법정 스님, 화가 김점선씨 등 고인이 된 문화계의 거인들과 자신의 인연을 되짚어보고, 그들 각자를 향해 담담한 목소리로 "당신을 사랑했다. 하늘에서 다시 만나자"고 속삭이는 편지다. 이 수녀는 다음 달 1일 편지와 일기, 시와 산문을 묶은 책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샘터)를 낸다.
1988년 박완서 선생이 아들을 잃었을 때, 아들을 잃은 어미는 아들 사진이 가득 담긴 앨범을 보여주며 말했다. "수녀님, 제가 젊으면 이런 아들 또 하나 다시 낳고 싶어요." 이젠 고인이 된 박 선생을 향해 이 수녀는 "언젠가는 저도 가야 할 영원의 그 나라에서 부디 편히 쉬시라"고 썼다.
이 수녀는 난소암으로 별세한 김점선 화백을 그리며 "내 치맛자락 꼭 붙들고 천당 가겠다더니 그렇게 먼저 가면 어떡하느냐"면서 "하늘나라에서도 꼭 한 반 하자 했으니 내가 도착할 그때까지 부디 잘 지내라"고 썼다.
김수환 추기경과의 '병실 인연'도 적었다. 2008년 두 사람이 서울성모병원에 입원 중일 때 추기경이 병실로 수녀를 불러 "수녀도 항암(抗癌)이라는 걸 하느냐"고 물었다. 수녀는 명랑하게 "항암만 합니까, 방사선도 하는데" 했다. 추기경은 '고통을 참아라', '기도하라'고 하는 대신 연민이 가득한 눈으로 간결하게 위로했다. "대단하다, 수녀."
이 수녀의 산문집은 2006년 이후 5년 만이다. 부산 성베네딕트수녀원에서 전화를 받은 이 수녀는 "장영희 교수, 김점선 화백 등이 다들 책 쓰고 떠났으니까, 사람들이 나에게도 '저러고 나면 가는 것 아니냐'고 할 것 같다"면서 웃었다.
"수도자도 사람이니까 '가까운 사람을 다 데려가시면 나는 어떡하나. 해도 해도 너무하신다' 싶을 때가 있지요. 잠이 안 오고 더러 울기도 해요. 그러나 기도하면 평정심을 찾지요. 사람은 모두 죽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영영 살 것처럼 남을 미워하고 사소한 일에 흥분해요. 그런 마음을 내려놓자고 얘기하고 싶어 책을 냈어요. 묶어놓고 보니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이별을 앞당겨 하는 느낌'이 있네요."